•
잡초가 되기 쉬운 식물의 성질을 ‘잡초성Weediness’이라고 하는데, 이 잡초성이 있는 식물만 잡초로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무 식물이나 잡초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는 종자식물이 약 7,000종 있는데, 이 가운데 잡초 취급을 받는 식물은 겨우 500종 정도다. 게다가 우리가 자주 보는 주요 잡초는 채 100종도 되지 않는다. 잡초가 이 세상에 3만 종류나 있다는데, 농사지을 때 문제가 되는 주요 잡초는 250종 정도라고 하니 주요 잡초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잡초는 ‘자칫 방해가 되는 식물’이라는 특별한 분야에서는 엄선된 엘리트인 셈이다.
2021.10.31.
•
잡초는 연약해서 경쟁에 뛰어든다 해도 강한 식물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잡초는 강한 식물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만 골라서 자라난다. 그런 데가 바로 길가나 밭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특수한 장소다. 숲속에서 잡초가 자라는 걸 보았다는 이들도 있을 텐데, 아마 하이킹 코스나 캠핑장처럼 인간이 관리하는 곳일 것이다.
2021.10.31.
•
연약한 식물 잡초의 기본 전략은 ‘싸우지 않는 것’이다. 강한 식물이 자라는 곳은 피하고 강한 식물이 자라지 않는 곳만 골라서 자리 잡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경쟁사회에서 도망친 낙오자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널리 퍼진 잡초는 누가 봐도 성공자로 보인다. 잡초는 경쟁을 피해 도망친 것이 아니다. 흙이 많지 않은 길가에서 난다는 것 자체가 잡초로서는 싸움인 것이고, 경작되거나 제초되는 밭에서 나는 것 역시 잡초로서는 싸움인 셈이다. 잡초가 강한 식물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를 피해온 것은 분명하지만 생존을 걸고 경쟁에 도전하는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승부를 겨뤄야 할 상황이 온다. 잡초는 그 승부를 겨룰 장소가 어딘지 알 뿐이다.
2021.10.31.
•
잡초를 뽑지 않는다니 대체 무슨 말일까? 그리고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잡초는 뽑지 않으면 빠르게 번식한다. 그러면 잡초뿐만 아니라 관목 등 대형 식물이 연달아 자라나면서 덤불이 되고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숲을 이룬다. 잡초라 불리는 식물은 일반적으로 다른 식물과 경쟁하는 데 약하다고 했다. 그래서 잡초는 풍요로운 숲에서는 자라날 수 없다. 잡초를 뽑지 않으면 경쟁에 강한 대형 식물이나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 그러면 잡초라 불리는 식물은 살아남을 수 없다. 물론 잡초는 사라져도 그곳은 이미 덤불이 되고, 머지않아 울창한 숲을 이루니 고작 밭이나 정원의 잡초를 없애자고 이 방법을 쓰기에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설명은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21.10.31.
•
농경이 시작되자 마을에서 살던 몇몇 잡초는 밭으로 진출했다. 이렇게 인류가 생식 범위를 넓히고 번영할 때 잡초 또한 생식 범위를 넓혀갔다. 인간은 1만 년이라는 농경 역사에서 다양한 작물이나 채소를 개량해 왔다. 잡초는 그 농경 역사 뒤 어두운 곳에서 인간의 농업이나 생활에 적응해 진화해 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잡초는 인간이 만들어냈다고도 할 수 있다.
2021.11.03.
•
물론 작물을 재배하는 논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작물을 재배하기 전에 땅을 갈아엎어서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마다 작물을 재배한다는 것은 항상 천이의 흐름을 앞으로 돌리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논이나 밭에 나는 잡초는 천이의 초기단계가 일어나는 짧은 기간에만 자라난다. 그러나 밭에서는 해마다 천이가 초기화를 반복한다. 그래서 자연계에서는 살아가지 못하는 잡초가 마치 제 집인 양 우거질 수 있다. 도로 경사면이나 강둑 등에서는 풀베기를 한다. 풀베기는 얼핏 잡초가 전혀 자라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보이는데, 더 큰 식물이 자라서 덤불이나 숲을 이루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천이의 진행을 막는 것이다. 땅을 갈거나 풀을 뽑아내는 곳은 식물이 생존하는 데 적합한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은 천이를 앞으로 되돌리거나 막는 일이다. 다시 말해 천이의 초기단계에 자라는 잡초는 갈아엎어지거나 뽑힘으로써 생존 장소를 확보하는 셈이다.
2021.11.15.
•
채소나 꽃의 씨앗은 심으면 바로 싹이 돋는데, 이는 인간이 싹을 틔우기를 원하는 시기에 씨앗을 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싹을 틔우는 것이 채소나 꽃에는 좋은 전략이다. 그러나 잡초의 씨앗은 발아시기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잡초 씨앗이 무르익어 땅에 떨어진다 해도 그때가 반드시 발아에 적합한 시기라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가을에 떨어진 씨앗이 그대로 싹을 틔운다면 곧 찾아올 혹독한 겨울 추위에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 것이다. 또 주변에 있는 식물이 울창해지면 싹을 틔운다 해도 빛을 받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그러니 잡초에 싹을 틔우는 시기는 사활이 달린 문제다.
2021.11.15.
•
일시적인 따뜻함은 곧 찾아올 겨울 추위를 예고할 뿐이다.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야 비로소 봄이 찾아온다. 그래서 씨앗은 일시적인 따뜻함에 쓸데없이 기뻐하지 않고 잠자코 겨울 추위를 기다린다. 겨울 추위, 다시 말해 저온을 경험하지 않으면 싹을 틔우지 않는 성질을 ‘저온 요구성’이라고 한다. 저온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요구하는 것이다. ‘겨울이 오지 않으면 진정한 봄도 오지 않는다’는 씨앗의 전략이 우리 삶에도 어떤 암시를 주는 듯하다.
2021.11.22.
•
잡초 씨앗에는 싹을 틔우는 것과 싹을 틔우지 않고 땅속에서 휴면하는 것이 있다. 이 중 땅 위로 돋아나는 잡초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땅속에서 기회를 엿보는 씨앗이 훨씬 더 많다. 영국에서 밀밭을 조사했더니 1제곱미터당 7만 5,000립이나 되는 잡초 씨앗이 땅속에 묻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양이 어마어마한 씨앗이 땅속에 있으면서 발아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다. 그러니 뽑고 또 뽑아도 끝을 모르고 땅속에서 싹이 트는 것이다. 이처럼 땅속에 있는 씨앗은 ‘매토종자’라고 하는데, 이 방대한 매토종자 집단을 ‘시드뱅크Seed bank’라고 한다. 쉽게 말해 종자은행이다. 땅속에 잡초의 방대한 재산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씨앗 가운데 대부분은 발아하지 않고 땅속에서 휴면 상태로 기회를 엿보고 있다.
2021.11.24.
•
원래 빛은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하는 그러데이션으로 나타내는데, 파란색과 빨간색의 중간인 녹색 파장은 빛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빛이 반사된다. 식물 잎이 녹색을 띠는 이유는 녹색이 불필요한 빛이기 때문이다.
2021.11.24.
•
유전적으로 다양성이 없는 특이한 식물이 있다. 바로 인간이 기르는 농작물이다. 농작물은 인간이 준비한 환경에서 재배된다. 발아 시기도 성장 속도도 모두 같아야 관리하기 더 편하며, 맛이 좋아야 하거나 병에 강해야 하는 등 인간이 원하는 성질도 정해져 있다. 따라서 그런 기준으로 뽑힌 엘리트들이 균일하게 길러진다. 만약 야생식물처럼 농작물에 다양성이 크면 어떻게 될까? 쌀 품종의 하나인 고시히카리를 심었는데 맛이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먹을 수 있을까? 벼 이삭이 무르익는 시기도 제각각이면 한꺼번에 벼베기를 할 수 없다. 실제로 옛날에는 벼가 익는 시기가 들쑥날쑥해서 익은 벼만 골라서 뽑았다고 한다.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300년 사이에 나온 석기 중 벼이삭을 잡아 뽑는 돌칼이 있다. 벼를 한꺼번에 벨 수 없었기 때문에 골라서 뽑았다는 증거다. 생물에는 원래 다양성이 있어서 각자 달라지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다. 그것을 균일하게 유지하기는 만만치 않다. 아무 쌀이나 사다가 밥을 지어도 밥이 맛있다. 슈퍼마켓에 가면 크기가 똑같은 채소들이 있다. 이는 당연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2021.11.24.
•
잡초의 변이에도 유전과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 변이 가운데 유전의 영향으로 생기는 변이를 ‘유전적 변이’라 하고 환경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표현형적 가소성’이라 한다. 잡초는 유전적 변이와 표현형적 가소성 둘 다 크고 타고난 형질도 제각각이며 환경에 맞춰 변화하는 힘도 크다.
2022.05.03.
•
유럽 북쪽 지방에는 독물질을 만들지 않는 유형이 분포되어 있지만 남쪽 지방으로 가면 독물질을 만드는 유형이 분포되어 있다. 남쪽 지방에서는 토끼풀을 먹어치우는 달팽이가 있기 때문에 토끼풀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독물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운 북쪽 지방에는 해충 달팽이가 없으니 토끼풀이 독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추운 지역으로 가면 갈수록 눈바람에 견디기 위해 키가 작아지거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잎이 작아진 풀이 있다. 또 추운 지역으로 가면 갈수록 꽃이 피거나 이삭이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는 풀도 있다. 추운 지역에서는 여름이 짧으므로 꽃을 빨리 피워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추운 지역으로 가면 갈수록’이라는 말처럼 식물이 기후 변화나 지역 이동을 따라 연속적으로 변이하는 것을 ‘지리적 변이’라고 한다.
2022.05.03.
•
이러한 일은 형질이 똑같아 다양성이 없는 집단보다 형질이 다양한 개성파 집단에서 더 잘 일어난다. 이렇듯 잡초는 집단 내의 다양성이 커서 집단 간 다양성도 쉽게 일어난다.
2022.05.03.
•
인간의 혈액형은 A, B, O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이 조합 가운데 AA, AO가 A형이고 BB, BO가 B형, AB가 AB형, OO가 O형이다. A, B, O 비율은 세대를 거쳐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세대가 바뀌어도 유전자 빈도가 변하지 않는 것을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이라고 한다. 만약 같은 반 친구 중 10명만 다른 세계로 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중에는 B형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B형은 B나 O 유전자를 가진 것이다. 그들 사이에 커플이 생겨 아이를 낳는다면 B형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즉 다음 세대의 혈액형 비율이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은 집단이 충분히 클 때 성립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이때는 특별히 B형이 우수하다고 해서 뽑힌 것은 아니다. 우연히 뽑힌 사람들 중 B나 O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많았을 뿐이다. 또 다른 10명을 뽑으면 이번에는 A형이 많은 집단이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소수 집단이 나뉠 때는 우연성에 좌우된다. 이것을 ‘유전적 부동’이라고 한다. 아담과 이브처럼 한 쌍이 무인도로 건너가 자손을 늘린다면, 그리고 그 첫 쌍이 둘 다 O형이었다면 그 섬의 주민들은 모두 O형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창시자 효과’라고 한다.
2022.05.03.
•
예를 들어 뚝새풀이라는 잡초는 밭에서 나는 집단과 논에서 나는 집단의 성질이 다르다. 이 둘은 씨앗 크기가 다른데, 과연 어느 쪽이 더 클까? 씨앗이 작은 잡초는 싹이 작게 트기에 경쟁력이 약한 대신 씨앗을 많이 만들 수 있다. 한편 큰 씨앗은 경쟁력이 강하지만 씨앗의 수는 적다. 많지만 조그마한 씨앗과 적지만 큼직한 씨앗은 각각 밭과 논 중 어디서 더 유리할까? 논보다 밭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일어나기 쉬운 불확실한 환경이라는 것이 힌트다. 짐작했겠지만 많지만 조그마한 씨앗은 밭을 선택하고, 적지만 큼직한 씨앗은 논을 선택한다. 논은 해마다 땅을 갈아야 할 시기가 정해져 있지만 밭은 다양한 작물을 만들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밭의 뚝새풀은 그렇게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손을 남기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씨앗을 남기려고 한다.
2022.05.03.
•
이 새포아풀은 일본에서는 골프장의 주요한 잡초로도 알려져 있다. 골프장의 티, 페어웨이, 런, 그린 등에서는 잔디를 각기 다른 높이로 베어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포아풀은 잔디 깎기에 베이지 않도록 잔디 높이보다 더 낮은 위치에서 이삭을 맺는다.
2022.05.03.
•
새포아풀이 장소에 따라 키가 다른 것은 환경에 맞게 외관을 바꾼 ‘표현형적 가소성’일까, 아니면 ‘유전적 변이’일까? 이는 씨앗을 가져와 같은 환경에서 재배해 보면 알 수 있다. 환경을 똑같이 맞췄더니 변화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표현형적 가소성이고, 환경이 같아도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유전적 변이다. 그럼 새포아풀은 어떨까? 새포아풀은 각각의 장소에서 씨앗을 가져와 같은 조건에서 길렀는데도 원래 있던 장소의 잔디 깎는 높이에 맞게 이삭을 맺었다. 그린에서 채취해 온 씨앗에서 싹이 난 개체 역시 한 번도 잔디를 깎지 않았는데도 땅과 아주 가까이에서 이삭을 맺었다. 이는 그린에서 나던 키 작은 새포아풀이 유전적으로 변이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잡초는 유전적으로 다양한 집단이라서 늘 일정한 비율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킨다. 골프장에서 잔디 깎는 높이보다 더 높은 곳에 이삭을 맺는 개체는 자손을 남길 수 없다. 잔디 깎는 높이보다 낮은 위치에서 이삭을 맺는 개체만이 자손을 남길 수 있다. 이렇게 각 장소에서 잔디 깎는 높이에 맞춰 이삭을 맺는 집단이 형성된 것이다.
2022.05.03.
•
만약 풀을 정해진 시기에 뽑아낸다면 이 시기에 생육 과정에 있던 개체는 도태되고, 머지않아 풀 뽑는 시기보다 빨리 씨앗을 떨어뜨린 개체나 풀 뽑는 시기에 싹을 틔우지 않은 개체가 선발될 것이다. 이처럼 단기간에 반복되는 큰 도태압(바람직하지 못한 유전형이나 표현형을 제거하는 정도로, 선발차로 표현하거나 총개체 중 도태된 비율로 표시한다-옮긴이)과 함께 잡초의 변화는 단기간에 일어난다. 현재 우리가 보는 생물은 항상 진화의 결과물일 뿐이다. 온갖 종분화는 모두 기나긴 진화 과정에서 일어났다. 진화를 두 눈으로 똑똑히 관찰한 사람은 없지만 잡초를 관찰하다 보면 종분화하는 순간을 목격한 듯한 기분이 든다.
2022.05.03.
•
“불량한 환경에서도 어느 정도 씨앗을 생산할 수 있다.” 잡초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이는 그야말로 잡초의 진면목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잡초의 위대함은 이게 다가 아니다.
2022.05.03.
•
베이커는 잡초가 불량한 환경에서도 씨앗을 남긴다고 했지만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잡초에는 이런 항목도 있다. “좋은 환경에서는 씨앗을 많이 남긴다.” 다시 말해 조건이 나빠도 씨앗을 남기지만 조건이 좋으면 씨앗을 더 많이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알고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예컨대 우리가 재배하는 채소나 화단의 꽃들은 거름이 적으면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어 꽃을 피우지 않고 말라 죽을 때가 있다. 그럼 거름을 너무 많이 주면 어떻게 될까? 줄기나 잎만 무성해지고 중요한 꽃이 피지 않거나 열매가 적게 달리기도 한다. 마치 식물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씨앗 남기기’를 잊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잡초는 다르다. 잡초는 조건이 나쁠 때도 최대한 활약해서 씨앗을 생산하지만 조건이 좋을 때도 최대한 성과를 내서 씨앗을 많이 생산한다. 자기 자원을 씨앗 생산에 얼마나 분배하느냐 하는 지표를 ‘번식 분배율’이라고 하는데, 잡초는 개체 크기에 상관없이 번식 분배율이 가장 알맞다. 조건이 나쁘면 나쁜 대로, 조건이 좋으면 좋은 대로 최선을 다해 최대한의 씨앗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잡초의 강점이다.
2022.05.03.
•
잡초는 표현형적 가소성이 크고 변화하는 식물이다. 그래서 인간이 정한 분류를 뛰어넘어 변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길가나 공터, 밭 등 다양한 장소에 자주 보이는 국화과 잡초에 망초가 있다. 망초는 가을에 싹을 틔우는 월년생잡초다. 그리고 겨울 동안 잎을 펼쳐 영양분을 비축했다가 봄부터 여름에 걸쳐 줄기를 뻗어 꽃을 피운다. 그러나 교란이 큰 장소에서는 천천히 생육해서 꽃을 피울 여유가 없으니 봄부터 여름에 걸쳐 발아하고 몇 주 동안 성장해서 꽃을 빨리 피운다. 다시 말해 여름 한해살이잡초로 사는 것이다. 망초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데, 겨울이 없는 열대 지역으로 퍼진 망초는 겨울을 넘길 필요가 없으므로 오로지 한해살이풀로 살아간다. 잡초는 이렇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생활사까지도 바꾼다. 인간은 정리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생물이라서 스스로 이과와 문과, 예능과 체능 등으로 구별하기 좋아한다. 그리고 ‘남자다워라, 여자답게 행동해라’ 또는 ‘넌 고등학생이니까……’ 등 여러 가지로 분류해서 특징을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잡초의 자유로움을 보면 ‘이렇게 해야 해’라는 의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알 수 있다. 자연계는 인간계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
2022.05.03.
•
제꽃가루받이와 딴꽃가루받이에는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느 쪽을 선택해야 유리할까? 이런 질문을 잡초더러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잡초가 자라나는 환경은 대개 불안정해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에 대한 답은 잡초세계에는 없다. 오히려 잡초는 양쪽 다 갖는 게 좋다. 그래서 잡초는 제꽃가루받이와 딴꽃가루받이를 상황에 따라 다 할 수 있는 ‘양다리 전략’을 선택한다. 예컨대 닭의장풀은 하루만 피는데 오전에 피었다가 오후에 진다. 만약 이 사이에 곤충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닭의장풀은 꽃가루받이를 해서 씨를 남길 수 없다. 그래서 닭의장풀은 꽃이 오므라들 즈음이 되면 암술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간다. 이때 툭 튀어나와 있던 수술도 마찬가지로 휘어 들어가 암술에 꽃가루를 붙여 제꽃가루받이를 한다.
2022.05.04.
•
폐쇄화閉鎖花라는 구조도 있다. 보랏빛 제비꽃이 봄에 핀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제비꽃이 여름에도 꽃을 피우는 폐쇄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름에 날이 더워지면 꽃을 찾아오는 곤충이 적어진다. 그런 여름에도 제비꽃은 꽃봉오리를 달고 있는데 결코 봉오리가 벌어지는 일은 없다. 사실 제비꽃은 꽃봉오리를 열지 않고 그 속에서 수술이 암술에 직접 붙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폐쇄화인데 꽃봉오리 상태에서 폐쇄화는 녹색을 띠므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2022.05.04.
•
종자식물은 이동할 기회를 수정하기 전에는 꽃가루 상태로, 수정한 다음에는 씨앗 상태로 두 번 얻을 수 있다. 이렇듯 씨앗은 식물을 혁명적으로 발달시킨 큰 발명이었다. 이 씨앗 덕분에 식물은 극적으로 널리 퍼질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씨앗은 건조에 강하다. 식물의 역사를 보면, 씨앗을 발명함으로써 식물은 물가를 떠나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땅은 식물로 뒤덮이게 되었다. 식물의 진화에서 씨앗은 획기적인 존재다. 씨앗은 딱딱한 껍질로 보호받으므로 건조에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씨앗 속에 들어 있는 싹은 껍질의 보호를 받으며 발아시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다. 식물은 물이 없으면 말라 죽는데, 씨앗은 물이 없어도 긴 시간 기다릴 수 있다. 아주 오래된 씨앗에서 싹이 났다는 뉴스를 종종 보듯이 씨앗은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캡슐과 같다. 그리고 오랜 시간 유지된다는 것은 그동안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씨앗이라는 타임캡슐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2022.05.04.
•
먼 곳으로 이동시키고 싶은 이 종이뭉치가 식물의 경우 바로 씨앗이다. 씨앗을 멀리 이동시켜 널리 퍼뜨리는 방법도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D1에서 D5까지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D1은 바람이나 물의 힘으로 씨앗을 옮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풍매산포風媒散布나 수매산포水媒散布라고 한다. D2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붙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동물매개산포라고 한다. D3는 자력으로 튀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자가산포라고 한다. D4는 특별한 구조 없이 그냥 떨어지는 방법인데, 중력산포라고 한다. 특별한 구조가 없어도 작은 씨앗이 바람에 날리거나 동물 털에 붙는 등 모든 씨앗은 어떤 식으로든 이동하는데 인간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분류한 것이 D4라는 의견도 있다. D5는 씨앗을 생산하지 않는 것이다.
2022.05.04.
•
씨앗에 휴면성이 있고 발아에 필요한 환경 요구가 다양하고 복잡하다. 발아가 제각각이며 흙속에 묻혀 있는 씨앗의 수명이 길다. 영양 성장이 빠르며 꽃을 피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생육이 가능한 한 오랜 기간에 걸쳐 씨앗을 생산한다. 자가화합성이긴 하지만 반드시 제꽃가루받이를 하거나 무수정생식은 하지 않는다. 딴꽃가루받이를 할 때 풍매화이거나 충매화일지라도 곤충을 특정하지 않는다. 환경이 좋으면 씨앗을 많이 생산한다. 환경이 나빠도 씨앗을 조금이라도 생산할 수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먼 거리까지 교묘하게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여러해살이인 경우 절단된 영양기관에서 강한 번식력과 재생력을 보인다. 여러해살이인 경우 인간의 교란이 일어나는 곳보다 더 깊은 흙속에서 휴면아(쉬는눈)를 가진다. 씨앗끼리 경쟁할 때 유리하도록 특유의 구조를 가진다.
2022.05.04.
•
잡초세계에서는 언제 싹을 틔울까 하는 타이밍을 말하는데, 여기서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난다. 만약 타이밍을 잘못 짚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데 이 타이밍을 재는 것이 바로 휴면이다. 언제 싹을 틔울지는 조건에 따라 복잡해진다. 휴면의 특징이 제각각이고, 흙속 얕은 곳에 있는지 깊은 곳에 있는지에 따라서도 환경 조건이 달라서 휴면하다 깨어나는 방법이나 각자 싹을 틔우는 타이밍은 더 들쑥날쑥하다. 그러나 발아 타이밍을 기다리다 죽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므로 씨앗은 수명을 최대한 길게 늘려 흙속에서 기회를 잠자코 기다린다.
2022.05.04.
•
속도는 잡초의 성공에 아주 중요한 열쇠다. 싹을 틔울 때까지는 얌전히 타이밍을 재는 것이다. 그러나 잡초가 자라는 곳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이므로 일단 싹을 틔우면 거침없이 쑥쑥 성장한다. 그러나 꽃을 피운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꽃을 하나 피우면 다음 꽃을 피우려 하고 또 다른 꽃을 피우려 하며 힘닿는 데까지 연달아 꽃을 피운다. 단거리선수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꽃을 피우는 장거리선수의 성격도 함께 갖춘 것이다.
2022.05.04.
•
이처럼 베이커는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기능을 준비해 두는 것이 잡초의 위대한 점이라는 사실을 설명했다. 게다가 벌레가 없어서 수정을 하지 못하면 그 원인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씨앗을 생산한다.
2022.05.04.
•
조건이 나쁠 때는 나쁜 대로, 좋을 때는 좋은 대로 씨앗을 생산한다는 것은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우리가 재배하는 채소나 화단의 꽃들은 생육이 나쁘면 더 자라지 않고 꽃을 피우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줄기나 잎만 무성해지고 중요한 꽃이 피지 않거나 열매가 적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잡초는 어떤 조건에서든 최대한 씨앗을 남긴다. 어떤 상황에 놓여도 씨앗을 남긴다는 목적에는 흔들림이 없다.
2022.05.04.
•
잡초가 나는 곳은 변화 가능성이 있는 불안정한 장소다.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것은 분포를 넓히려는 목적도 있지만, 위험을 분산하려는 목적도 있다. 또 성장과정에서 잘리기도 하고 꺾이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서 말라 죽을 정도로 잡초는 약하지 않다. 다시 싹을 틔워 자라난다. 그뿐만 아니라 절단된 영양기관에서도 모두 싹을 틔워 역경을 기회로 삼아 번식한다.
2022.05.04.
•
그러나 표면적인 난리에 말려들지 않고 사람들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서 잠자코 기다리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땅 위로 쭉 뻗어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가만히 죽은 척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잡초에는 혹독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특별한 구조가 있다. 자신만의 무기나 특이한 전투법이 없으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2022.05.04.
•
백합은 해안에 자생하는 야생식물이지만 잡초로서 널리 퍼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백합에서 진화한 대만나리는 잡초로 널리 퍼지고 있는데 이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가장 큰 차이점은 씨앗에서 꽃이 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현재 원예종으로 개량된 백합은 구근(땅속에 있는 식물체의 일부인 뿌리나 줄기 또는 잎 따위에 양분을 저장한 것-옮긴이)으로 늘어나므로 씨앗은 생산하지 않지만, 야생 백합은 씨앗으로 널리 퍼진다. 다만 백합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이 필 때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데 대만나리는 씨앗 상태에서 몇 개월만 있으면 꽃을 피울 수 있다.
2022.05.04.
•
그러나 벼 중 식물이 원래 가진 ‘탈립성’을 회복한 돌연변이가 나타난다. 탈립성을 획득한 벼는 논에 씨앗을 흩뿌린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 벼가 이듬해 마음대로 자라나서 논의 잡초가 되는데 이것이 ‘잡초벼’다. 아무리 잡초라 해도 벼는 벼인데 논에서 자라난들 무슨 문제가 되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논에서 벼로 자라난다 해도 씨앗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수확할 때는 쌀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쭉정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벼가 해마다 늘어나는 데다가 원래는 벼이다 보니 눈으로는 구별되지 않아 다른 잡초처럼 뽑을 수도 없고 제초제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2022.05.04.
•
예부터 사람들은 잡초를 이용해 왔다. 예를 들면 오트밀로도 유명한 귀리는 원래 메귀리라는 보리밭의 잡초였다. 메귀리는 보리가 잘 자라지 않는 곳이나 기후에서도 왕성하게 자랐다. 차라리 메귀리를 재배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메귀리는 재배식물로 개량되어 오트밀이 되었다.
2022.05.04.
•
야생식물을 개량하면 재배식물로 만들 수 있는데 야생식물에서 개량된 작물을 1차작물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귀리는 야생식물에서 잡초인 메귀리로 진화했고, 나아가 잡초 메귀리를 개량해 작물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잡초로 진화한 식물에서 작물이 된 것을 2차작물이라고 한다. 호밀빵 원료인 호밀도 귀리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보리밭의 잡초였는데 작물로 이용한 것이고, 율무차 재료인 율무도 잡초인 염주를 개량해 만들어진 2차작물이다.
2022.05.04.
•
잡초의 다양한 특성은 잘만 이용하면 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관점에서 이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건조에 강한 잡초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잡초들은 사막의 녹지화에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도시에서는 열섬 현상이 문제가 되는데 흙이 적은 도시에서도 잡초를 기를 수 있으니 잡초가 푸른 자연을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옥상을 푸르게 만드는 옥상 녹화에는 고온이나 건조에 강한 돌나무(세덤)속 식물을 심는데, 이 중에는 멕시코돌나물이나 돌나물, 땅채송화 등 길이나 밭에서 볼 수 있는 잡초종도 자주 이용된다. 불타는 태양이 내리쬐는 옥상이라는 혹독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는 잡초가 활약하는 것이다. 잡초는 돌보지 않아도 성장한다. 창문이나 건물의 벽을 덮어서 햇빛을 피하는 ‘그린커튼(녹색커튼)’으로 이용되는 여러해살이 나팔꽃 종류도 잡초다. 또 관리에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잔디로 주목받는 자생 잔디나 우산잔디(버뮤다그래스)는 길가나 황무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다.
2022.05.04.
•
잡초는 바라지 않는 곳에 자라나는 식물이라고 정의된다. 다시 말하면 훼방꾼인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은 잡초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 잡초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훼방꾼이라고 깊이 인식되어 있을 때 비로소 ‘잡초’가 된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훼방꾼’이라고 여기면 그저 그런 잡초일 수 있지만 이것이 곧 이제껏 본 적 없는 가치를 지닌 식물일지도 모른다. 잡초인지 아닌지는 우리 마음이 정하는 것이다.
2022.05.04.
•
잡초를 관찰해 보면 잡초가 밟혀도 일어선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잡초는 밟히면 일어서지 않는다. 사람들이 잘 밟는 곳에 자라난 잡초를 보면, 밟혀도 타격을 적게 입을 수 있도록 땅에 길게 누워 있듯이 자라났다. 그러니 ‘밟히면 일어서지 않는다’는 것이 진정한 잡초의 혼이다. 듬직하다는 이미지를 주는 잡초치고는 너무 한심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2022.05.04.
•
그런데 밟혔는데 왜 일어서야 할까? 잡초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꽃을 피워 씨앗을 남기는 일이다. 그렇다면 밟히고 또 밟혀도 계속 일어서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 낭비다. 그런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밟히면서도 꽃을 피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밟히면서 씨앗을 남기는 데 에너지를 쏟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인 것이다. 그래서 잡초는 밟히면서도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써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확실히 남긴다. 밟히고 또 밟혀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무모한 끈기보다는 훨씬 굳세고 듬직하다.
2022.05.04.
•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넘버원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면 공존할 수 있다. 넘버원만이 살아남는 것이 자연계의 철칙인데도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생물이 각자 영역에서 넘버원이라는 것이다. 넘버원이 중요한가, 온리원이 중요한가?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알 것이다. 모든 생물은 넘버원이다. 그리고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장소를 갖고 있다. 이 장소는 온리원이다. 즉 모든 생물은 넘버원이면서 온리원이다.
한국 사회는 서식지가 하나인 사회. 넘버원만 살 수 밖에.
2022.05.04.
•
이렇게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온리원인 장소를 생태학에서는 ‘니치niche’라고 한다. 니치는 각 생물이 고유하게 가지는 것이다. 니치는 장소일 때도 있고 먹이일 때도 있고 환경일 때도 있다. 니치란 원래 장식품을 꾸미기 위해 사원 등의 벽면을 움푹 파서 마련한 부분을 뜻한다. 생물학 분야에서는 그 말을 따와서 ‘어느 생물종이 생식하는 범위의 환경’을 가리키는 말로 쓰게 되었다. 생물학에서 니치는 ‘생태적 지위’라고 해석된다. 움푹 파인 곳 하나에 장식품을 하나만 꾸밀 수 있는 것처럼, 한 니치에는 한 생물종밖에 살 수 없다.
2022.05.04.
•
생물은 균일하지 않고 각각 다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이해하기 불편하므로 인간은 평균값을 취한다. 그리고 평균값을 그 집단의 대표로 삼는다. 수학능력시험처럼 수치로 나타나면 평균값을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수학능력시험이라는 하나의 기준점으로 측정한 숫자일 뿐이다. 생물은 기준점이 더 다양한 개성 넘치는 존재다. 평균값은 인간이 편하게 관리하고 싶어서 하나의 기준점만으로 계측하고 더하고 나눈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평균값에서 너무 동떨어진 값은 ‘오류값’으로 친다. 그러나 자칫하면 평균값에서 멀리 떨어진 오류값이 살아남거나 새로운 진화를 낳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 생물의 세계다.
2022.05.04.
•
당신이 넘버원이 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그것을 발견하기는 만만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넘버원이 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가장 간단하게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종목은 바로 나만의 개성이다. 나만의 개성이라는 종목에서 당신을 이길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나만의 개성을 갈고닦아 점점 더 끌어올리는 것이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가장 쓸모없는 일이다. 특정 인물을 롤 모델로 삼고 나아가는 한 당신은 넘버원이 될 수 없다. 누구나 특기가 있고, 노력하지 않아도 간단히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노력해도 잘되지 않는 일도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철저하게 노력하는 것도 넘버원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이다.
2022.05.04.
•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온리원인 장소가 니치다. 그것은 자신이 잘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일이다. 그때 살짝 방향을 틀어 그 주변에서 자신의 니치를 찾아보자. 잘하는데 좋아하지 않는 일은 살짝만 비틀어 보면 좋아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비틀어 보기는 생물에게도 중요한 전략이다. 모든 생물은 그렇게 조금씩 방향을 틀면서 넘버원이 될 수 있는 니치를 찾는다.
2022.05.04.
•
자연계에는 어떤 법률도 도덕도 없다. 법이 통하지 않는 무법지대다.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치열한 경쟁 속에 속고 속이는 기 싸움이 펼쳐진다. 그 누구도 서로 도와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생물들은 서로 돕고 균형을 유지하며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2022.05.04.
•
‘독주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서로 도와야 이득이다.’ 이것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35억 년 동안 생물이 진화하면서 이끌어낸 답이다. 그 어떤 도덕심도 없는 자연계에서 고르고 골라 얻어낸 답에는 이렇게 도덕심이 흘러넘친다. 넘버원이 된 생물들은 서로 관계하고 도우며 살고 있다. 생물들의 온리원인 니치는 그대로 생태계에서 온리원 역할을 한다.
2022.05.04.
•
이는 생물의 종 이야기지만 나는 인간세계에도 적용된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서 넘버원이며, 어딘가에서 온리원 역할을 해낸다. 그리고 누구 하나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2022.05.04.
•
인생은 길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잡초는 선택지를 좁히지 않고 많은 옵션을 준비해서 미래를 대비한다. 어제오늘 일로 끙끙 앓을 필요가 없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올곧은 길은 없으며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기에 인생이 의미가 있다. 그런 것도 모두 인생의 즐거움이다. 길가에 핀 잡초를 보면 올곧게 자라난 잡초는 하나도 없다. 잡초 인생에도 온갖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뒤돌아봤을 때 인생은 짧다. 내 할머니는 “소년이 나이 들기는 쉬우나 배움을 이루기는 어렵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어렸던 나는 이 말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지금에야 뼈저리게 느낀다. 나 또한 젊은 독자 여러분에게 마지막 한마디로 이 말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