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고체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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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어디서인가 무한정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사실 다른 자원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사막 모래는 대개 건설용 자재로는 부적합하다. 물이 아닌 모래에 의해서 침식되다 보니 형태가 너무 둥글어져서 결합력이 떨어진다.) 모래는 물이나 공기를 제외하면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천연자원이다. 매년 인류는 거의 500억 톤의 모래와 자갈을 소비한다. 이 정도 양이면 캘리포니아 주 전체를 덮을 수 있다. 모래 소비량은 불과 10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 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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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은 앞으로 30년 안에 도시 인구가 25억 명이 더 늘어나리라고 내다보았다. 현재 전 세계의 도시 인구는 매년 6500만 명씩 늘고 있다. 해마다 지구에 뉴욕 시가 8개씩 더 생기고 있는 셈이다. (중략) 2011년에서 2013년 사이, 중국은 미국이 20세기 내내 소비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시멘트를 소비했다. 두바이 같은 나라는 특정 종류의 건설용 모래가 무지막지하게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두바이는 사막이 광활하게 펼쳐진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하면서도 모래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입한다. 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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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각이 져서 대개 콘크리트용으로 쓰이는 건설용 모래는 모래 군단 내에서 보병 역할을 맡는다. 건설용 모래는 양이 풍부하고 쉽게 구할 수 있고 순도가 그리 높지 않다. 주성분은 석영이지만 채굴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른 광물도 섞여 있다. 건설용 모래는 사실상 어느 나라에서나 구할 수 있고, 대체로 건설용 모래에 꼭 필요한 짝꿍인 자갈과 함께 섞여 있다. 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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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모래는 알갱이가 균질해서 야자수 모양으로 유명한 두바이의 인공 섬처럼 대지를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경우에 유용하다. 바닷모래도 콘크리트용 골재로 ㅅ용할 수는 있지만 모래에서 염분을 씻어내는 값비싼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건설업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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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사는 순도가 높고(최소 95퍼센트), 건설용 모래나 바닷모래에 비해서 채취가 가능한 곳이 적다. 산업용 모래라고도 불리는 규사는 모래 군단의 특수 부대로, 평범한 보병들보다 좀더 정교한 임무를 수행한다. 규사는 유리를 만들 때에 필요한 모래이다. 순도가 높은 모래는 가치를 더욱 높이 인정받는다. 프랑스 퐁텐블로 중북부 지역의 모래는 순도가 98퍼센트에 이른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유리 제작업체들은 수백 년 동안 이 지역의 모래를 사용해왔다.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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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사 중에는 미 해군 최정예 부대에 해당하는 모래도 있다. 상대적으로 양이 적은 고순도 석영으로 이루어진 이 소규모 엘리트 부대는 희귀한 특성을 가진 덕분에 아주 놀라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 모래는 반도체 칩을 제조하는 첨단장비를 제작하는 데에 사용된다. 또한 일부는 최고급 골프장에 반짝이는 모래 벙커를 만들 때에나 페르시아 만에 있는 경마장 트랙에 선을 그을 때에 사용되기도 한다. 부자들의 경호를 정예 특공대가 맡는 것과 비슷하다. 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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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채취가 해변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나라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이 모래를 마구 훔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자메이카의 모래 도둑들은 돈을 벌려는 심산으로 이 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한 곳에서 약 400미터의 해변을 없앴다. 지금도 이보다 작은 규모의 모래 도둑질은 모로코, 알제리, 러시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제7장에서 살펴보겠지만 플로리다 주나 프랑스 남부 지방을 비롯한 여러 휴양지에서도 인간이 벌이는 온갖 행위 때문에 모래 해변이 사라져가고 있다. 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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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래로 모래 채취업자들은 최소한 인도네시아의 섬 24곳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이 섬들을 이루던 퇴적토 대부분이 배에 실려서 싱가포르로 향했다. 싱가포르는 간척 사업으로 영토를 늘리기 위해서 막대한 양의 모래가 필요했다. 이 도시국가는 지난 40년간 130제곱킬로미터를 간척했고, 지금도 간척 사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모래 수입국이 되었다. 싱가포르가 모래를 막대하게 소비하면서, 인접 국가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의 해변과 강바닥이 헐벗게 되었고, 인접 국가들은 모두 싱가포르에 대한 모래 수출을 제한하거나 전면 금지했다. 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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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시추 기술인 수압파쇄법이 크게 각광받자 '수압파쇄용 모래'(frac sand)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중략) 노스다코타 주에서 수압파쇄법이 큰 인기를 끌자 많은 사람들이 수압파쇄용 모래를 찾아 미네소타 주와 위스콘신 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광활한 면적의 숲과 들판이 이 귀한 모래를 손에 넣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파헤쳐졌다. 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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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나 바다 밑바닥에서의 모래 채취는 수중 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물을 탁하게 만들어 수중 생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2013년 케냐 정부는 환경 파괴를 이유로 서부 지역에서의 강모래 채취를 전면 금지했다. 스리랑카에서는 모래 채취 때문에 몇몇 강의 바닥이 몹시 낮아지자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면서 식수원에 피해를 받게 되었다. 2011년 인도 대법원은 "무분별ㅊ한 모래 채취가 위험 수준에 이르러" 전국의 하천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으며, 그 결과 어류와 수중 생물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고, 여러 종류의 조류가 "재앙"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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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 근처를 흐르는 샌 베니토 강에서 골재를 1톤 채취할 때마다 사회기반시설에 1100만 달러씩 피해가 간다고 한다. 피해 금액은 고스란히 납세자의 몫이다. 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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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닥에 쌓인 모래는 수돗물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모래들은 마치 스폰지처럼 흐르는 물을 빨아들여 물이 땅속에 있는 대수층(지하수가 있는 지층)으로 스며들게 한다. 그러나 강바닥에 쌓인 모래층이 사라지면 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계속해서 바다로만 흘러 대수층이 줄어든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 일부 지역과 인도 남부지역이 강에서 모래를 채취한 이후로 심각한 식수 고갈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또다른 지역에서는 물 부족 때문에 농작물이 말라 죽었다. 29p
제2장 도시의 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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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는 불이나 전기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콘크리트는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고, 이동하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또한 콘크리트는 현대 사회의 뼈대이자 수많은 건물이 올라서는 토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콘크리트 덕분에 거대한 강물을 댐으로 막고, 우뚝 솟은 마천루를 짓고, 전 세계 오지를 선조들과 달리 편히 여행할 수 있다. 인간과 접촉하는 빈도로 보면, 콘크리트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공 재료이다. 44p
제3장 고속도로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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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에 걸쳐 도로망을 구축하고자 노장군 아이젠하워는 막대한 양의 모래를 투입했다. 주간 고속도로 건설에는 마일당 대략 콘크리트 1만5000톤이 소요되었다. 고속도로망 건설에 들어간 모래와 자갈의 양은 중앙분리대, 고가도로, 경사로, 바닥층을 모두 합해서 15억 톤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의 양이면 지구에서 달로 이어지는 보행로를 왕복으로 두 번 만들고도 남는다. 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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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가 수송대 활동에 참여하고 있을 무렵, 칼 그레이엄 피셔는 도로 문제를 자기가 직접 해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피셔는 스피드광으로, 20세기 전환기 무렵에 유행한 빠른 기계들(처음에는 자전거, 그다음에는 자동차)에 열광했다. 피셔는 자전거와 자동차의 인기를 드높이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으며, 도로 건설 초기에 유력한 도로 건설업자 중의 한 명으로 새로운 발명품들이 제 성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는 군대에 도움을 요청해서 모래 군단 수백만 톤을 옮겼고, 이 모래들은 그가 사랑하는 자동차가 다닐 미국의 첫 번째 고속도로 건설에 투입되었다. 77p
제4장 모든 것을 보게 해주는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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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덕분에 우리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역사가 앨런 맬팔레인과 게리 마틴은 <유리 심해탐구선>에서 유리가 없었다면 사진도 영화도 텔레비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세계에 대한 이해"도 "항생제의 개발이나 DNA의 발견에서 비롯된 분자생물학의 혁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조차 증명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유리 덕분에 거울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인류의 관점도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102p
제6장 수압파쇄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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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압파쇄용 시추관에는 모래가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시추관 한 곳에서만 화물 열차 200대 이상 분량인 2만5000톤의 모래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특수 임무를 부여받은 다른 모래들처럼 수압파쇄용 모래도 까다로운 물리적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엄청난 압력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야 하기 때문에 석영 함유량이 최소 95퍼센트 이상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 건설용 모래는 대부분 수압파쇄용으로 적절하지 않다. 선택지는 유리 제작용 실리카 모래로 좁혀진다. 하지만 수압파쇄용 모래가 되려면 그에 알맞은 형태도 갖춰야 한다. 입자가 균열 부위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작아야 하고 탄화수소가 잘 흘러나올 수 있도록 둥글어야 한다. 1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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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후로 미국에서만 수압파쇄용 실리카 모래의 사용량이 10배 증가했다. 이제는 유리나 반도체 제작 등 온갖 용도에 소요되는 실리카 모래의 사용량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2016년에 실리카 모래의 연간 총 생산량은 약 9200만 톤에 이르렀고, 그중 75퍼센트에 육박하는 양이 수압파쇄에 사용된다. 유리 제작에 들어가는 양은 7퍼센트에 불과핟. 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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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를 세척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수 문제도 있다. 보통 폐수는 침전지로 보낸다. 팻 포플이 우려하는 응집제가 바로 이곳에서 쓰인다. 응집제는 물속에 있는 부유물을 제거해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응집제에는 아크릴아미드, 신경독소,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는 단점도 있다.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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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광산의 가장 큰 폐해는 대기 오염이다. 트럭, 중장비, 모래 처리시설은 입자가 2.5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초미세먼지가 섞인 먼지를 무수히 배출한다. 초미세먼지는 페 속에 깊이 들어가서 천식이나 폐질환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 169p
제7장 해변이 사라져가는 해변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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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로더데일이 자리한 브로워드 카운티는 해변 침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십 년간 인근 해저에서 모래를 퍼서 해변에 보충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채취 가능한 해저 모래마저 사실상 고갈되었다. 마이애미 비치나 팜비치와 같은 플로리다 주의 여러 해변 도시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공식적으로는 미국 내 해변의 절반이 침식이 심각한 상태로 판정받았다. 브로워드 카운티의 천연자원 행정관인 니콜 샤프가 이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플로리다 주에서 모래가 바닥나고 있습니다." 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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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질조사국은 2017년 보고서에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2100년까지 캘리포니아 주 해변의 3분의 2가 완전히 침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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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사람이 방해하고 있다. 항구, 방파제, 선착장을 지으며 해안을 마구 개발하는 바람에 바닷모래의 유입이 가로막힌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들어선 댐도 모래가 해변으로 가서 쌓이는 과정을 단절시켰다. 캘리포니아 주 남부 해변은 댐 때문에 강이 실어다주는 퇴적물의 80퍼센트를 잃고 많았다. 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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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콩 강에 댐이 건설되고 상류에 모래 광산이 들어서자 인구 2000만 명과 국가 식량의 절반을 책임지는 터전인 베트남의 메콩 강 삼각주에 충적토가 쌓이지 않게 되었다. 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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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자메이카에서는 악명 높은 모래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도둑들이 코랄 스프링스 인근의 아름다운 백사장에서 400미터에 달하는 해변의 모래를 훔쳐간 것이다. 이 해변에 건설 중이던 리조트는 공사를 중단했다. 경찰청은 트럭 500대 분량의 모래가 지역 경찰과의 공모하에 인근에 있는 경쟁사의 리조트 건설 현장에 팔린 것 같다고 추측했다. 185p
제10장 세계를 정복한 콘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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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양 호에는 아파트를 눕혀놓은 크기의 준설선 수백 척이 매일 떠 있다. 그중 가장 큰 준설선은 모래를 시간당 1만 톤씩 퍼올릴 수 있다. 미국, 독일, 중국의 연구진이 합동으로 진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매년 포양 호에서 채취되는 모래는 2억 3600만 세제곱미터로 추정된다. 포양 호는 미국에서 가장 큰 모래 채취장 세 곳을 합친 것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큰, 세계 최대의 모래 채취장이다. 포양 호 바닥에서 모래를 막대하게 퍼올리는 사업은 수익성이 좋기는 하지만 호수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최근 포양호는 수위가 급격하게 떨어졌으며, 연구진은 모래 채취가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2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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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건설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인류가 건설한 주택, 사무실, 교통시설의 부피는 지난 40년간 지은 것이나 인류 역사 내내 지은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는 말했다. 275p
제11장 우리가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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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에 모래와 자갈 1000억 톤 이상이 충적토와 강바닥, 해변, 해저에서 마구 채취되면서 강과 삼각주가 훼손되었고 산호초와 물고기가 죽어나갔으며 이들 자원에 기대어 살아가던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모래를 사용하는 콘크리트, 간척, 수압파쇄업계가 또다른 피해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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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재 가격은 세계 전역에서 비슷하게 상승하고 있다. 리서치 회사인 프리도니아는 2016년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불법 모래 채취를 근절하려는 노력이 크게 실패하면서 2019년에는 여러 나라에 매장된 모래와 자갈의 양이 급격하게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것이며 도심지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중략) 프리도니아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지난 10년간 건설용 모래 1톤의 평균 가격은 50퍼센트 가량 올랐다. 모래 가격의 상승은 콘크리트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는데, 지난 20~30년 동안 수많은 도시에서 주택 가격이 대폭 상승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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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도 국내에서 쓸 모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근 국가에 대한 건설용 모래 수출을 잠시 중단했다. 그렇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모래 고갈을 걱정하고 있다. 3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