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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완독일
2022/10/31
카테고리
금융
경제
작가
니컬러스 섁슨
출판사
부키
리뷰
4 more properties

제1장 존재하지 않는 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비밀주의 사법 체제는 국외 거주자에게 제공하는 피난처형 편의로부터 링 펜싱(Ring fencing) 함으로써 자국 경제를 역외 거래 수법으로부터 보호한다. 역외는 기본적으로 회피를 위한 별천지' 이기 때문에 역외 서비스 혜택은 주로 비거주자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중략) 비밀주의 사법 체제를 판별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한 국가의 금융 서비스 산업이 총경제 규모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을 살펴보는 것이다. IMF 는 2007년 이 방법을 적용해 영국을 역외 피난처로 정확히 지목한 바 있다. 33쪽
하지만 비밀주의 조세 피난처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결정적인 점은 따로 있다. 해당 국가의 정치가 금융 서비스 산업의 이해 당사자들에 의해 좌우되고, 자국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역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의미 있는 반대 행위는 제거되어 왔다는 것이다. 34쪽
룩셈부르크 금융 부문 자회사가 온두라스 소재 자회사에 대출을 하고 연간 2천만 달러의 이자를 부과한다고 하자. 온두라스 자회사는 그만한 액수의 이자를 온두라스에서 생성된 이익에서 비용으로 처리할 것이며, 이는 곧 세금 고지서를 없애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룩셈부르크 자회사가 거둔 2천만 달러의 초과 이득은 룩셈부르크에서 적용되는 극도로 낮은 조세 피난처 세율로 과세될 뿐이다. 회계사가 마술봉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고액의 세금 고지서는 사라져 버리고 자본은 역외로 유출되는 것이다. 37쪽
다국적 기업들은 내부적 이전 행위에 따른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이익’은 저세율이 적용되는 조세 피난처로 넘기고 ‘비용’은 고세율 국가로 떠넘겨 손금 산입 시킬 수 있다. (중략) 세금 고지서 총액은 온두라스에서만이 아니라 영국과 미국에서도 확 줄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2006년 세계 3대 바나나 회사인 델몬트, 돌, 치키타의 영국 내 매출은 거의 7억 5천만 달러에 달했으나, 그들이 납부한 세금 총액은 고작 23만 5천 달러에 불과했다. 38쪽
어느곳이 조세 피난처인가? 대략 네 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럽의 조세 피난처들(네덜란드, 스위스, 모나코,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이다. 둘째, 런던의 금융가 시티를 중심에 놓고 세계로 뻗어 나가 과거의 대영제국을 기반으로 느슨하게 형성되어 있는 영국 영향권의 조세 피난처들을 꼽을 수 있다. 셋째, 미국의 영향권이 미치는 구역이다. 넷째 유령으로는 소말리아나 우루과이 같이 분류 외에 존재하는 몇몇 국가들을 들 수 있지만~ (후략) 40쪽
권위 있는 한 추산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영국계 조세 피 남처 집단은 국제 은행권 총자산의 3분의 1을 훌쩍 넘게 차지하며, 여기에 시티를 포함하면 전체 비중은 거의 2분의 1에 육박한다. 이러한 역외 위성 네트워크는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이 네트워크 덕에 시티는 진정으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전 세계 모든 시간대에 산재한 영국계 조세 피난처들은 근처 국가에서 유출입되는 유동 성 강한 국제 자본을 마치 거미줄이 지나가는 곤충을 낚아채듯이 유인하고 포획한다. 이렇게 조세 피난처로 유치된 자본의 상당 부분과 자본 관리 비즈니스는 이제 런던으로 넘어간다. 둘째. 시티에서 활동하는 금융 종사자들은 영국의 거미줄 덕분에 유사시 범법 행위를 그럴듯하게 부인 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42쪽
안쪽에는 영국 왕실령 3곳이 있다. 채널 제도를 구성하는 저지 관할구와 건지 관할구, 그리고 맨 섬이다. 이 왕실령은 실질적으로 영국이 통제하고 지원하지만 유사시 영국이 발뺌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독립적 지위를 갖추고 있다. 43쪽
거미줄의 그다음 겹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해외 영토 14개 지역이다. 대영제국의 마지막 남은 해외 기지들인 셈이다. 모두 합해 약 25만 명 정도의 인구를 보유한 해외 영토에는 세계 최고의 비밀주의 피난처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케이맨 제도, 버뮤다, 버진아일랜드, 터크스케이커스 제도, 지브롤터가 해당된다. 44쪽
케이맨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금융 센터다. 8만 개가 넘는 등기 회사, 전 세계 헤지 펀드의 4분의 3, 그리고 뉴욕시 소재 은행 전체 수신고의 4배가 넘는 1조 9천억 달러의 수신고 등을 보유하고 있따. 그런데 케이맨에 있는 영화관 수는 단 한 군데다. 45쪽
세 번째는 영국계 피난처 거미줄의 맨 바깥 겹으로, 시티와 긴밀히 연결돼 있기는 해도 완전히 독립한 상태인 홍콩, 싱가포르, 바하마, 두바이 및 아일랜드 등이 포함된다. 45쪽
시티와 같은 세력이 없었던 미국에서는 조세 피난처 개념이 훨씬 더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미국 공직자들은 최소한 케네디 대통령이 조세 피난처의 “졸재를 말살할’ 법안 제정을 의회에 요청한 1961년 이래 역외 조세 피난처를 단속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47쪽
미국에 자리 잡은 역외 체제 역시 영국의 역외 체제와 같이 세 등급으로 작동된다. 연방 정부 수준에서 볼 때 미국은 오롯한 역외 스타일로 외국 인의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정한 비밀주의 조항과 법들을 면세 조치와 함께 폭넓게 활용한다. (중략) 두 번째 역외 등급은 개별 주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여러 주에서 역외의 매혹적인 혜택들을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 주는 라틴 아메리카 지배 엘리트들이 은행 거래를 하는 곳이다. 47쪽
50년대 미국 기업들은 미국 전체 소득세의 약 5분의 2를 부담했으나, 현재 이 수치는 5분의 1로 떨어졌 다." 최상위 0.1퍼센트에 속하는 미국 납세자들은 치솟은 소득에도 불구 하고 유효 세율이 1960년 60퍼센트에서 2007년 33퍼센트로 떨어졌다. 55쪽
2005년 한 연구에서 베이커는 불법 금융 자금 흐름 총액을 다음 3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는 세계은행이 추후 인정한 것이다.) 마약 밀매, 위조, 조직범죄 등과 같은 범죄 연루 자금은 약 3330~5500억 달러에 이르러 불법 금융 자금 총액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지역에서 해외로 송출 된 뇌물이나 해외에서 수수한 뇌물과 같은 부패한 자금은 불법 자금 총액 의 3퍼센트 정도로 약 300~500억 달러에 달한다. 세 번째는 불법 자금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다국적 상거래다. 바로 여기서 무척 중요한 점이 하 나 더 있다. 마약 밀매업자 및 테러리스트, 그리고 기타 범죄자들 또한 위 장 은행, 신탁 회사, 허수아비 회사 등 다국적 기업들이 쓰는 것과 똑같 은' 역외 탈세 메커니즘과 속임수를 동원한다는 점이다. 60쪽

제2장 형제는 용감했다

윌리엄은 바로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던 것이다. 사업의 성격상 다국적 기업들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통합적으로 운영하지만, 조세권은 국가마다 가지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여러 나라에 산재한 자회사 및 계열사들 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어느 나라가 해당 다국적 기업이 거둔 소득의 어 느 부분을 과세할 것인가 하는 퍼즐을 풀기란 괴기스러울 정도로 복잡한 일이다. 76쪽
이러한 이중 과세는 처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면 사업 소득 과세를 하 는 국가가얼마 되지 않았고 세율 또한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1차 세계 대전에 앞서 많은 나라가 군비와 사회 보장 제도 예산을 위해 세금을 올 리기 시작했다. 이중 과세는 뜨거운 이슈가 됐고 기업들은 불평하기 시작 했다. 1920년 국제상업회의소IcC가 설립되었는데, 조세는 처음부터 주된 의제가 되었다. 77쪽
즉 신탁 회사에 재산을 양도 해 버렸으므로 설립자 자신은 더 이상 과세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에 대 해 미국 국세청이 아주 간단하게 핵심을 짚었다. 비록 신탁 회사를 통 한 조세 전략들이 외견상으로는 합법적 신탁 회사에서처럼 재산 소유권 의 혜택으로부터 책임과 지배를 분리시키는 듯하지만, 사실상 신탁 회사 설립자인 납세자 자신이 신탁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85쪽

제3장 중립국의 수지 맞는 장사

이러한 구조는 역외 피난처로 기능 할 수 있는 또 다른 동력을 만들어 냈다. 각 주 정부들이 서로 자기 주가 세율이 더 낮다며 경쟁을 벌여 세율이 지속적으로 인하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 비밀주의와 결합해 스위스가 전 세계 최대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호숫가에 위치한 추크 주는 아주 단출하게 2700개의 대기업을 유치하고 있는데, 이는 주민 4명당 대기업 한 개꼴인 셈이다. 98쪽
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스위스는 정치적 난민을 보호하는 헌법상의 의무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33년 4월 히틀러가 권좌에 오른 지 몇 주 뒤, 스위스는 유대인 난민들에 대한 자동적 망명권 부여를 사실상 부정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 유대인들은 인종적 난민이지 정치적 난민이 아니란 이유에서였다. 스위스 사법경찰부 경찰국장이던 하인리히 로트문트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전력을 다해 보 호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특히 우리 영토 동쪽에서 넘어오는 외국의 유 대인에 대한 이민 허용과 같은 자비도 잊어야 한다." 로트문트는 심지어 1938년 국경 검문소에서 유대인들을 좀 더 쉽게 골라낼 수 있게 유대인의 여권에 J 라는 낙인을 찍으라고 게슈타포를 설득하기도 했다. 104쪽

제4장 케인스가 옳았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대략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구가했던 기간인 1940~1971년에 개발도상 국들은 은행업 관련 위기를 겪은 적이 없으며' 16번의 통화 위기만이 발 발했을 뿐이다. 그러나 1973년 이후 25년 동안은 다른 경제적 재앙들을 제외하고서도 17번의 은행발 위기와 57번의 통화 위기가 있었다. 보다 장 기적인 측면을 관찰한 경제사 연구도 동일한 점을 밝혀냈다. 경제학자 카 먼 라인하트와 케네스 로고프는 2009년 지난 800년간의 경제사를 돌아보며 중요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논평가 마틴 울프가 해당 연구 논문 을 비평하며 표현한 것처럼, 그들은 "금융 자유화와 금융 위기는 마치 말 과 마차처럼 같이 움직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137쪽
IMF는 2010년 2월 출간한 보고서에서 폭증하는 자본 유입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는 국가에게는 때때로 자본 통제책이 “정책적 도구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37쪽

제5장 은행들의 위험한 탈주극

수에즈 운하 사건의 잔상이 가시면서 종국에는 늙은 제국을 대체하고 시티를 과거보다 더 영광스러운 금융 중심지로 끌 어올릴 새로운 무언가가 바로 이 시점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금융 중심지로서 런던의 역할은 주로 대영제국 시절 형성된 통화권에 기반한 것이었다. 대영제국의 구성 국가들 은 런던에서 은행 거래를 했고 영국 파운드를 자국의 화폐로 쓰거나 아니 면 자국 화폐를 파운드에 고정시켰다. 그 통화권 내부에서 국제 교역이나 자본은 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고, 외한 보유액이 유출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150쪽
그러나 맥밀런은 한 가지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런던의 상업은행들에게는 마치 영업의 생명줄과 같은 국제 교역에서 이루어지는 파운드화 대출 총량을 영국 정부가 규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조 치는 치명적인 한 방이었다. 아니 최소한 치명적인 조치로는 보였다. 그러나 실상 벌어진 것은 상업은행들이 국제적 대출 영업을 파운드화 기반에서 미 달러화 기반으로 바꿔치기한 일이었다. 151쪽
영국은행의 외환 거래 부서 책임자였던 볼턴은 런던에서 미규제 상태였 던 새로운 미국 달러 시장을 도입하는 데 산파역을 하기에 완벽한 위치에 있었다. 의지만 있었더라면 영국은행은 달러 시장을 규제하자고 쉽게 결 정할 수도 있었다. 직접 규제하지도 않기로 하고 다른 나라들이 규제하겠 다는 것도 막은 것을 보면 사실상 영국은행이 그 시장을 적극적으로 창출 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바로 버밍엄 대학 국제경제학 교수 로넌 페일런이 말한 "유로마켓 또는 '역외 금융 시장'이라 불리는 규제의 진공 상태'가 탄생한 것이다. 153쪽
런던에 새로 생성된 이 시장을 먹여 살리는 정치적 사건들이 즉시 생겨 나기 시작했다. 당시 소련은 뉴욕에 지나치게 많은 달러를 묶어 두는 것을 원치 않았다. 냉전 상황이 더 악화되면 압류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 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붕괴 중인 제국의 위험천만한 화폐인 파운드에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소련은 런던에 생성된 새로운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즉 런던에 달러로 투자하면 되는 것이었다. 1957년 모스크바 나로드니 은행이 수십만 달러의 예금 예치 계좌를 개설한 것을 필두로 소련에서 런던으로 돈더미가 굴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마르크스 주의 국가라 천명한 소련이 역사상 가장 족쇄 풀린 자본주의 체제를 배양하는 이러한 역설의 현장을 마르크스가 보았더라면 아마 그 부리부리한 눈썹을 치켜세웠을 것이다. 154쪽
현대의 역외 체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곳은 추문으로 얼룩지고 가지런한 야자수가 무성한 카리브 해의 섬나라들이나 취리히의 알프스 언덕배기가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대영제국이 무언가 음흉한 것에 무너져 내림에 따라 런던에서 시작된 것이다. 155쪽
유로마켓은 눈덩이처럼 덩치를 키워 가 1980년에 5천역 달러 규모가 있고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88년이 되자 2조 6천억 달러에 이르게 된다. 1997년에 이르러 전 세계 대출의 약 90퍼센트가 유로마켓을 통해 이루어졌다. 유로마켓은 현재 극도로 영역이 넓어 글로벌 금융 흐름을 감독하는 국제 결제은행마저 유로마켓의 전체 규모 를 집계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유로마켓은 그저 모든 것을 서 로묶어 금융화해 외환 시장으로 넘기고 있는 것이다. 159쪽
그러나 그 은행의 역외 고 객들은 거의 항상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이거나 대기업들이다. 은행과 세계의 대표적 부자들에게는 공돈을 주고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역외 체제의 반복되는 주제이자 동기이다. 우리는 역외 체제에서 이러한 면모를 계속해서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정부에서 은행에 자본 과 지급 준비금을 보유하도록 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다. 즉 금융 공황 상태의 발생에 대비하는 것이다. 호황기에는 공짜 돈을 하릴없이 쌓아놓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투자가 버핏이 인상적으로 말했듯이 "누가 발가벗은 채로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물이 빠졌 을 때뿐"이다. 2007년 이래 세계가 다시 깨닫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계산은 도박과도 같은 돈놀이를 하는 금을가들이 아니라 일반 납세자들이 치른다. 161쪽
심지어 사람들이 우려를 제기하기 시작한 지 여러 해가 지난 뒤인 1975 년이 돼서도, 미국 의회의 한 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는 어떻게 유로마켓 이 그때까지 정치적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놀라움 을 표명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와 똑같은 우려를, 한 세대가 지나 금융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에 퍼져 나가던 2008년 6월 국제결제은행이 다시 제 기하게 된다. 국제결제은행은 절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토록 거대한 그림자 뱅킹(shadow banking) 체제가 출현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한 사례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곧 보게 되겠지만, 바로 역외 유로마켓이 상당 부분 이러한 그림자 뱅킹 체제를 배양해 낸 토양이었던 것이다. 169쪽

제6장 마수와도 같은 역외의 거미줄

기록을 보면, 영국의 공공서비스 부문에서는 역외 피난처와 관련해 두 갈래의 의견이 나온다. 한편에는 조세 피난처의 행각에 격렬하게 반대하 면서 케이맨 제도를 특히나 혐오했던 국세청 관료들 같은 재무부가 존재 한다. 미국 당국자들도 분명 매우 화가 나 있었고 영국 외무부도 그 입장 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만 전반적으로는 조세 피난처를 반대하 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척점에는 역외 조세 피난처라는 새로운 유 형의 계획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영국은행과, 영향력 면에서는 영국은 행에 비해 떨어지지만 역시 역외 금융을 지지했던 영국 해외개발부가 존재한다. 전선은 그어졌다. 언쟁은 점점 더 활발해졌고 심지어 험악해지기에 이르렀다. 184쪽
영국 왕실령 중 가장 중요한 곳인 저지는 이미 그 전부터 오랫동안 역외 금융업을 통해 이익을 보고 있었다. 18세기 타국의 부유한 상인들이 영국 의 관세를 회피하고 기타 부도덕한 행각을 벌이는 장소로 활용하면서부터 저지는 이미 일종의 역외 금융 중심지였다. 나폴레옹 전쟁 후에는 전역한 영국 군 장교들이 자신들의 연금 소득에 붙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찾아들었다. 또 저지는 유럽 급진주의자들의 은신처이자 온상이 됐다. 그들은 박해를 피해 우선 영국으로 도망쳤다가 영국에 준하는 일종의 경유지인 이곳 저지로 흩어져 들어온 것이다. 그들이 저지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이 프랑스, 벨기에, 러시아. 헝가리 및 기타 여러 지역에 있던 다수의 사촌들 앞에서 겪을 황망한 사태를 회피할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곗거리도 생길 수 있었다. 191쪽
비즈니스 네트워크는 대부분 오래된 식민지 연출을 따라 성장 하고 종국에는 런던으로 연결된다. 스크리븐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전 세계 도처의 부자들에게서 예금을 끌어모은 뒤 큰 덩어리로 만들어 런던으로 보낸다. 저지 은행들은 매일 예금 잔고를 결산하는데, 초과된 자 금들은 여기에 남겨지지않고 다른 은행들로 가거나 이런저런 경로를 통 해 시티로 가게 된다. 내게 여윳돈이 좀 있다면 그 돈을 아버지에게 건네 는 것과 마찬가지로, 번들거리는 돈뭉치들은 여기 있지 않고 런던으로 가는 것이다.” 193쪽
중국 정부가 1978년 수출에 문을 열고 '개방 정책과 같은 시장 개혁 조 치들을 도입하면서 홍콩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오랫동안 금융 범죄와 싸 워 온 잭 블럼의 회고에 따르면, 영국은 홍콩을 무엇이든 가능하되 규제 는 없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은 홍콩에 주주구성을 비밀로 한 회사들을 설립한다. 오늘날 홍콩은 중국에서 발생 하는 대부분의 부패가 완성되는 곳이다.” 196쪽
홍콩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외 금융 세계에서는 여전히 꽤 규모가 작다. 흥콩의 비거주자 예금은 2007년 1490억 달러였는데, 이는 케이맨이 유치하 고 있는 비거주자 예금 총액 1조 7천억 달러의 11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액수다. (중략) 모건스탠리의 스타급 아시아 담당 경제학자인 셰궈중은 2006년 내부 이메일에서 "싱가포르는 부패한 인도네시아 기업가들과 정부 관리들을 위한 자금 세탁원으로 기능한 것이 성공의 주된 이유"라고 밝히면서 "자국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카지노를 세워 중국으로부터 부패한 자금을 유인하려 하고 있다" 고 말했다. 197쪽
바로 이런 점을 보면 왜 은행들이 비밀스러운 역외 예금을 그토록 좋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IOS 조사관들은 IOS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총예금의 10~20퍼센트에 해당하는 액수는 사실상 영구적 자본금이라는 가정하에 영업했다고 한다. 예금 소유주들이 인출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돈이었거나, 아니면 소유주들이 이미 사망한 경우여서 그랬다는 것이다. 201쪽
비밀주의 국가들에 위치한 역외 금융업의 은행 예금이 유독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이유는 예금자들이 비밀성을 보장받는 대가로 시장 이자율보 다 낮은 이자율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은행들이 역외 프라이빗 뱅킹 사업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201쪽

제7장 후발주자 미국의 분발

베넷은 바로 이전 가격이라는 기업 재무 기법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전 가격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바나나 회사들이 서류상의 이익은 저세율 국가로, 비용은 고세율 국가로 옮겨 놓기 위해 회사 재무 계정을 전 세계 도처의 조세 피난처로 돌리는 기법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212쪽
1963년 케네디는 먼저 이자 형평세 thoteEpualaton T를 도입해 자본 유출을 최소화하려 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금융권은 역외의 유로마켓으로 몰려들어 투자 재원을 마련했다. 1962~1963년의 1년 동안 런던발 대출액 규모가 3배로 늘었다. 미국은 계속해서 자본을 잃어 갔고, 1965년 존슨 대통령은 자본 유출에 대한 제한적 통제책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218쪽
기업은 자금을 역외에 합법적으로 둘 수 있었고, 국내로 들여오지 않는 한 대 부분 과세되지 않은 채로 역외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역외 금융의 핵심적 요소인 '이연세(defered tax)'라 불리는 개 념이다. 기업들은 소득을 역외에 무한정 쌓아 놓을 수 있고, 단지 주주들 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기 위해 국내로 들여올 때만 과세 대상이 되는 것이다. 219쪽
이연세는 결국 지역 기반 영업을 하는 소규모 회사들에 비해 다국적 기업들에게 엄청난 경쟁 우위를 준다. 미국 기업만 해도 2009년에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미과세 해외 소득을 역외에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2004년 부시 행정부는 기업 쪽 친구들에게 역외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더라도 통상적인 35퍼센트의 세율이 아니라 35퍼센트를 적용한 세금만 납부해도 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3600억 달러가 넘는 돈이 바람을 가르듯 미국으로 들어왔고, 대 부분은 자사주 매입이나 최고 경영진의 보너스를 두둑이 하는 데 쓰였다. 219쪽
베트남 전쟁의 열기가 뜨거워질 무렵 미국의 재정 적자는 미국 정부를 곤 경에 빠뜨렸다.(이 재정 적자는 1981년에 단행된 레이건 행정부의 위대한 세금 감면 조치 로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 회사들은 회사채를 발행해 돈을 빌려야 했다. 그러 나 미국 내에서 빌린다면, 정부와 자금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 처 하고, 급기야 이자율을 높이고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터였다. 따라서 해외에서 빌리는 것이 최상인 상황이었다. (중략) 미국 채권에 투자해 채권 수익에 대해 30퍼센트의 원천 징수세 를 납부하든지, 아니면 수익에 대해 비과세인 유로몬드를 매입하기 위해 룩셈부르크로 가든지 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것이 전혀 고민거리가 아니었기에 미국 채권 투자를 회피했다. 225쪽
국제 조세 문제에 대한 미국 내 최고 권위자이자 당시 미 국세청의 이러 한 태도에 대해 반대하던 몇 안 되는 사람들에 속했던 마이클 매킨타이어 는 당시 미 국세청의 심리가 다음과 같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것들 은 유로본드, 무기명 채권 들이라 사실상 과세하기가 불가능하다. 당신들 영국인들은 (무과세에다 비밀이 보장되는 유로본드 시장으로) 재미를 봤다. 그래서 우리도 동참하고 싶었다. 우리 역시 핫 머니를 유치하고 싶었다.” 226쪽
카터 행정부는 비밀주의 국가들에 대한 대규모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 했다.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조세 피난처들에 대한 도전이 시도된 것이었 다.조사 결과 발표된 고든 보고서는 조세 피난처의 행각이 “범죄자를 끌어들이고 타국을 약탈하는" 상황이라고 비난하고 미국이 앞장 서서 세계의 조세 피난처를 단속해 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었다. 227쪽
그 효과는 엄청났다. 1981년 IBFS를 설립한 미국은 이제 번성하는 자체 역외 채권 시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타임>은 “미국은 갑자기 세계에 서 가장 규모가 크고 어쩌면 가장 매력적인 조세 피난처가 됐다." 라고 지 적했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새로운 법과 규정 들이 야금야금 미국 역내 금융 시장의 방어벽들을 갉아먹고 있다. 1990년대 말 클린턴 행정부 재무 장관이자 전직 골드만삭스 회장인 로 버트 루빈은 기만적인 새 법령을 도입해 역외 금융의 침탈을 심화시켰다. 바로 QI(적격 중개 기관) 제도가 그것이다. 228쪽
미국은 금융 비밀주의를 연방 정부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주 정부 수준에 서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델라웨어 주는 미국에서 역외 비밀주의 를 제공하는 가장 규모가 큰 주다. 네바다 주와 와이오밍 주는 가장 불투 명하기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주에서는 2007년까지만 해도 폭력 조직이나 마약 밀매자 들이 특히 선호하는 투자 수단인 무기명 증권이 허용되었으 며, 특히 느슨한 규정 때문에 이사를 비롯한 회사 임원들이 명의자 지위 를 얻을 수도 있어 실제 소유주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 또 네바다는 세금 관계나 회사 설립 관련 정보를 미 연방 정부와 공유하지 않으며, 주에 등 록된 기업들에게 영업 소재지를 보고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231쪽
이와 같은 인위적 거래의 유명한 상징이 바로 오바마가 1만 2천 개가 넘 는 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다며 비판한 바 있는 케이맨 소재 어글랜드 하우스다. 오바마는 '어글랜드 하우스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이거나. 아니면 최대 규모의 세금 사기가 벌어지는 곳이거나 둘 중 하나"라 말했다. 그렇지만 케이맨 제도 금융감독청 청장 앤서니 트래버스는 오바마에 게 케이맨이 아니라 델라웨어에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 면서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 있는 업무용 건물인 1209 노스 오렌지 스트 리트에는 총 21만 7천 개의 회사들이 들어 있다"고 역공했다. 240쪽
이 건물은 법적으로 말한다면, 포드, 제너럴 모터스, 코카콜라, KFC, 인 텔, 구글, 홀렛 패커드,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그리고 애초에 케이맨에서 시작된 다수의 부실 부채 담보부 증권 유통의 배후가 되는 수많은 전문 신탁 회사 및 특수 목적 법인을 포함한 여러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다. 241쪽

제9장 탈규제의 가속화 페달

이를 간파한 델라웨어는 역외 금융의 고전이라 할 만한 메뉴 를 선보이게 된다. 바로 역진적인 주 조세 구조였다. 즉 부자일수록 과세 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델라웨어 주는 은행 면허세를 2천만 달러 미만의 과세 소득에 대해서는 약 8퍼센트 과세하고, 2천만~ 2500만 달러는 6퍼 센트를 과세하는 식으로 해서 최고 구간 과세 소득에 대해서는 고작 1.7 퍼센트의 과세율을 적용했다. 287쪽
2주 뒤 듀폰은 드디어 델라웨어 금융 센터 개발법에 서 명했다. 델라웨어는 신용카드, 개인 대출, 자동차 대출 등에 대한 이자율 상한선을 철폐하기로 했다. 은행들은 개인이 신용카드 채무를 불이행하 면 가택을 압류할 수 있고, 해외나 역외에 영업망을 구축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또 역진적 주세 구조를 통해 이익을 기대할 수도 있게 됐다. 무 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델라웨어 주법이 이제 다른 주로 수출될 수 있게 됐으므로, 미 전역으로 진출할 일만 남게 된 것이다. 288쪽
저지의 LLP 법안은 델라웨어와 비교해 훨씬 악성이었다. 이에 따르면, LLP들은 자사 재무 계정을 감사받을 필요가 없었고, 송장이나 상용 서간 문에도 자사가 저지에 등록된 LLP라는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법안에는 회계 법인을 규제하거나 비위 행각을 조사할 수 있는 규정이 전혀 없었으며, 일반 공중을 비롯한 회계 감사 행위의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권리도 제공하지 않았다. 일반 공중으로부터 이처럼 놀랄 만 큼의 관대한 양보를 얻어 내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기업들 은 고작 1만 파운드의 일회성 수수료와 연간 5천 파운드의 갱신료만 내면 됐다. 300쪽
<파이낸셜 타임스>도 문제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런던의 업자들은 '역외'로 옮겨 간다는 협박을 영국 정부가 쓸 만한 LLP 법을 내놓지 못하면 겁주는 데 쓸 일종의 몽둥이로 계속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회계사들은 영국 금융 관계자 대부분을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시카를 비난했으며 "영국 정부는 반기업적”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렀다. 308쪽
1999년 IMF는 은행들 사이에 대출이 이루어지는 은행 간 시장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그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 바 있다. 파생 금융 상품 의 장외 거래가 성장해 온 것은 상당 부분 역외 은행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역외 금융 시장의 상당 부분이 은행 간 거래 시장이라는 점은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가 도미노적으로 전파될 수 있음을 뜻한다. 역외 은행들은 역내 은행에 비해 부채 비율이 무척 높고 지불 능력은 떨어질 것이다." 312쪽
보고서는 헤지 펀드 LICM이 몰락한 뒤 곧바로 나온 것이었다. LICM 은 거의 편집적인 수준의 금융 비밀주의로 위장막을 두른 채 엄청난 규모 의 리스크를 감당하는 투자를 했다가 1998년 붕괴하면서 미국 은행업계 체계를 거의 붕괴시킨 바 있다. 당시 LTCM은 난마처럼 얽힌 전형적인 역 의 금융업체의 구조를 띠고 있었다. 즉 경영진은 코네티컷 주 그린위치에 머물렀지만, 설립 등기는 델라웨어 주에서 이루어졌고, 운용한 펀드 자체는 케이맨 제도에 소재했다. 그렇지만 LTCM의 붕괴 후 애가 타는 분석 작업이 수없이 이루어졌어도 이 사태를 역외 금융의 시각에서 심각하게 고찰한 분석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계속 반복되고 있 는 실정이다. 313쪽
미국 증권화업계가 가장 흔하게 이용하는 곳은 케이맨 제도와 델라웨어 주다. 그리고 유럽 증권화업계가 특수 목적 법인을 가장 많이 설립하는 곳은 아일 랜드와 룩셈부르크, 저지, 영국이다. 313쪽
2009년 IMF는 조세 피난처가 어떻게 글로벌 부채 성장 동력을 가동시켰는지 자세히 보여 주는 보고서를 출판했다. 역외 조세 피난처는 역내 조세 제도의 왜곡과 더불어 부채 성장 동력을 가동시켰고 기업들로 하여 금 자기 자본이 아닌 부채를 통해 자금을 유치하도록 부추겼다. 보고서는 이러한 행위가 "아주 만연해 있고 규모도 크며, 금융 안정성에 미칠 잠재 적 충격을 감안했을 때 정당화하기도 어려운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319쪽
최근의 경제 위기를 탈규제만이 아니라 글로벌 거시 경제의 불균형 탓으로 돌리는 이들이 많다. 즉 수출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이나 인도,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로부터 미국이나 영국 같은 적자 국가들로 자금이 이동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때문에 적자 국가 내부에서 과잉 소비와 과잉 대출 문제가 야기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불법 적으로 유출되는 금융 자금의 규모가 연간 1조 달러에 달해 왔다는 GFI 프로그램의 추산을 살펴보자.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의 자금은 중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규모가 큰 개발도상국에서 영국과 미국 같은 대규모 OECD 국가들로 유출돼 왔다. 이와 반대 방향으로 이전되는 불법 자금 흐름의 규모는 이보다는 훨씬 작다. 이런 점을 감안한 금융 자본 이 동의 결과는 해마다 수천억 달러가 넘는 돈이 부유한 경제 대국과 금융 비밀주의 국가들로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322쪽
일례로 재송장 전략이라 알려진 기법을 생각해 보자. 런던의 한 무역업자 가 모스크바 원유 수출업자로부터 1억 달러 상당의 원유를 구매했다고 가 정한다. 모스크바 수출업자는 런던 수입업자에게 1억 2천만 달러짜리 송 장을 보내면서, 그중 2천만 달러는 자신의 런던 계좌에 아무도 모르게 입금해 달라고 요청한다. 러시아 정부의 무역 거래 통계는 실제로는 1억 달 러만 유입됐어야 했으나 총 1억 2천만 달러가 영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기록할 것이다. 사라져 버린 2천만 달러는 무역 거래 통계를 취합하는 연구 자들에게는 철저히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지만 그 2천만 달러는 러시아 에서 영국으로 불법적으로 유출된 자금으로서 실재적 효력을 갖는다. 그 2천만 달러가 예를 들어 런던의 주택 사업에 투자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 러면 그 러시아 인은 임대 소득을 올리며 조세를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발생한 불법적 자금 흐름에서는 생산성을 높이는 어떤 활동도 없고 오히려 영국 주택 시장이 왜곡되었으며 은행만 모기지 영업에서 이윤을 거뒀을 뿐이다. 런던의 주택 가격은 오르고, 주택 첫 구입자들은 자산 획 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어느 정도 힘들어졌음을 깨닫게 될 것 이다. 주택 시장의 거품은 더욱 부풀어 오르게 되고, 따라서 부채는 경제 전반에 걸쳐 그만큼 더 쌓여 가게 된다. 323쪽
2007년 금융 시장은 작동을 멈췄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다른 시장 참여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자산 가치가 얼마인지, 그들의 리스크는 무엇이고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거나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외 체제가 바로 가장 큰 불투명성의 산실이다. 323쪽

제12장 시티, 새로운 제국을 꿈꾸다

그림자 뱅킹 영역은 구조화 투자 기구나 자산 담보부 기업 어음 발행 도관 회사 등과 같이, 2007년 위기가 닥치던 시점 에 미국 전체 은행 체제가 보유하고 있던 10조 달러보다 더 큰 금융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알려진 바도 없고 규제 대상도 아니던 여타의 금융 구조들을 망라한다. 바로 이 그림자 뱅킹 체제가 세계 경제를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415쪽
미국 은행업계에서 금융적 재앙이 발생하면 해당 금융 회사의 런던 사 무실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미국 보험 회사 AIG를 날려 버려 미국 납세자들에게 1825억 달러라는 막대한 부담을 안긴 부서는 런던에 소재 한 400명 규모의 금융 상품 취급 부서였다. 422쪽
이 기업과 은행 들을 런던으로 끌어들이는 추가적인 유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금융 비밀주의다. 영국은 스위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은행 비밀주의 를 추구한다. 스위스가 비밀주의 위반을 형사 범죄로 다루는 반면, 영국 은 다른 장치를 고안해 활용한다. "혹시 영국 신탁 회사법을 검토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나라의 모든 은행가와 금융 전문 변호사들은 진정으로 돈을 숨기고 싶으면 런던에 가서 신탁 회사를 설립하라고 권유한다.” 423쪽
시티는 더욱 박차를 가해 1980년대에는 부유한 아랍인들을 끌어들였고 1990년대에는 일본 부유층과 아프리카 석유 부자들을 유치했다. 최근에는 키프로스와 같은 도관 회사 피난처들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의 신흥 과 두 재벌인 올리가키에게 러시아 사법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탄탄한 방어벽을 제공하면서 공세적으로 구애를 펼치고 있다. 2008년 4 월에 이르자 구소련 독립국가연합 출신 100개 회사가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423쪽
글래스먼은 고대 헌법의 중추를 이루는 네 개의 기둥에 대해 설명했다. 수뇌 역할을 하는 국왕, 정신 영역을 다루는 교회, 국가 체계를 이루는 의회,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돈줄의 역할을 하는 시티다. 여기서 시티는 왕권이나 의회에 대해 아주 제한적인 수준으로 복속되어 있었을 뿐 그들과 서로 엮여 복잡다단한 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정복왕 윌리엄이 1066년 영국을 침공했을 때, 시티를 제외한 전 영국은 권리를 포기했지 만, 시티는 자유 보유권하의 재산과 고대적 개념의 자유 및 자체 민병대 조직을 지켜 냈다. 434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도적 로비스트인 시티 의회 대표관은 현재도 영국에서 "영국 의회와 시 티를 연결하는 도관으로서" 여전히 막강한 권력으로 남아 있다." 의원 신 분이 아니면서도 하원 의사당에 유일하게 출입할 수 있는 자인 시티의 의 회 대표관은 하원의장 뒤에 눈에 띄지 않게 착석한다. 435쪽
영국 의회에서 제정된 몇몇법제들이 시티에 적용되기도 하지만, 영국 의회가 제정한 상당수 법제들은 시티를 특정해 법 적용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면제시킨다. 그러므로 시티는 영국이라는 국민국가와 연결돼 있으면서도 별개의 입헌 국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시티는 자신이 위성체로 거느리고 있는 역외 피난처들인 저지나 케이맨 제도와 많이 닮았다. 437쪽
시티는 저지나 산유국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과 동일한 네덜란드 병을 영국에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네덜란드 병 이 론에 따르면, 특정 경제 체제 내에서 하나의 압도적인 산업 분야는 경제 체제의 전반적인 가격 수준을 상승시켜 제조업이나 농업과 같은 타 산업 분야가 대외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산업 혁명의 발상 지 영국에서, 금융업계의 엄청난 규모와 높은 급여로 인해 교육 수준이 높은 노동력이 제조업 분야로 진입하는 것이 철저히 차단되고 있다. 467쪽

결론

영국을 중심으로 한 조세 피난처망, 나아가 조세 피난처 전체로 산소가 공급되는 것을 중단시킬 또 하나의 묘책이 있다. 바로 '공식 산정 및 단일 세 기반 연결 재무 회계’다. 이름이 다소 끔찍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이 방식은 조세를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다룰 수 있는 방안이며, 이미 미국에서 몇몇 주 정부가 성공적 으로 실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 방식은 회계사들이 곡예 부리듯 창조해 캔 법적 허구가 아니라 실제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진 실질적 기업 활동에 기반해 기업들을 과세하는 방식이다. 4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