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교도소에서 만난 해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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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말대로 어쩌면 무시는 돈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납치하려는 배에 처음으로 오르는 사람을 ‘점퍼’라고 부르는데, 소말리아 해적과 협상을 벌인 경험이 많은 협상 전문가에 따르면 점퍼는 위험 수당을 추가로 받는다고 한다. “처음 배에 오르는 사람은 5000달러를 더 받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선원들이 던지는 것에 맞을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이지요. 개인 이력에도 좋게 작용합니다. 다른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기 좋으니까요.”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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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보트를 마련해서 상어잡이에 나섰다. 상어 지느러미가 고가에 팔렸기 때문에 벌이가 짭짭한 일이었다. 동아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상어 지느러미 수프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중략) 그들은 매일 바다로 나갔고, 항상 그물 가득 고기를 자밨다. “우리는 함께 일했습니다. 밥도 같이 먹었지요. 라시드에게 커피 한 잔이 생기면, 내가 반 잔을 마시는 식이었습니다.” 고기를 잡아서 번 돈을 내전 때 무너진 집도 다시 지었다.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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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말리아 앞바다에 예멘 어부들이 출몰하면서 그들의 운도 기울기 시작했다. (중략) “당시 우리는 세 자루의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기를 소지한 목적은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그들은 먼바다에서 우리 물고기를 쓸어갔습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아무것도 건질 수가 없었지요. 우리는 점점 화가 났습니다.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물고기를 잡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예멘 사람들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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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법 어업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의 첫 번째 목표가 된 대형 외국 선박은 독일의 트롤선이었다. 이스마일과 라시드는 그 배가 자신들의 그물을 가져갔다고 확신했다. 둘은 미친 듯이 총을 쏘면서 트롤선을 공격했다. 결국 트롤선이 멈췄다. 그들은 선장을 만나 소말리아 연안에서의 불법 어업 할동을 나무랐다. 선장은 계속 고기잡이를 할 수 있게 해주면 5000달러를 주겠다면서 자기를 풀어줘야 돈을 가져올 수 있다고 애원했다.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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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횟수가 늘어나도 소말리아 연안 해역으로 밀려드는 배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커다란 배들이 끊임없이 몰려왔습니다. 고기잡이를 통제하는 정부가 없는 상황에서 계속 이러다가는 내가 누구를 죽이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만두는 쪽을 택했지요.” 2001년 그는 고기잡이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불과 두어 시간 만에 3톤의 물고기를 쌓아올리던 것에서 일주일에 0.5톤 정도로 어획량이 줄어도 너무 줄었기 때문이다. (중략) 요즘 대형 화물선들을 공격하는 해적들에 대해서도 동정심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해적들 편입니다.”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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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엄청난 쓰나미가 인도양을 뒤흔들었다. 쓰나미는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되어 소말리아 연안까지 강타했고 수많은 피해자가 나왔다. 에이들도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해일에 파괴된 117척의 배 중에는 에이들의 배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략) 에이들은 “난민이 되지는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고기잡이를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외국 통신사에 소말리아 어부들이 처한 곤경을 알리고, 그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중략) “우리는 우리 바다에 불법으로 들어오는 배들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트롤선들에게 겁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말리아인들이 어선을 잃으면서 공격의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 이내 외국 트럴선들을 납치해서 보수와 몸값을 챙기게 되었다. “우리는 국제 사회가 무언가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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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우스스타호는 사우디 국적의 초대형 유조선으로 돈으로 환산하면 6000만 달러어치의 석유를 싣고 있었다. 알려진 바로 납치범들은 2009년 초에 300만 달러의 몸값을 받아냈다. 뉴스 전문 채널들이 몸값 전달 장면을 방송하면서 시리우스스타호 납치 사건은 순식간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몸값이 든 컨테이너가 낙하산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갑판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그 장면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해적들의 꿈에 힘을 실어주었다.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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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소는 많은 이들이 소말리아 해적들의 수도라고 부르는 곳이다. 2008년 말이 되자 해적 행위로 인한 부가 이 도시에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드러났다. 양철 지붕을 인 판잣집들이 즐비하던 곳에 다층 주택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뉴 보사소’라고 부른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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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쪽 정보에 밝은 사람들은 히르시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푼틀란드의 고위 관료들은 해적 행위로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해적 행위를 직접 부추기지는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 런던에 있는 소말리아 해적 전문가 로저 미들턴의 말이다. “소말리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모든 인물이 해적질로 이득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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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행위는 이른바 낙수 효과 때문에라도 매혹적으로 여겨진다. (중략) 배를 납치하면 지역 상인들도 이득을 본다. 몸값을 받을 때까지 인질들을 먹여 살릴 물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은 양, 염소, 물, 연료, 쌀, 스파게티, 우유, 담배 등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해적들에게 공급하면서 돈을 번다. 때로 인질 협상은 몇 달씩 끌기도 한다.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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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 되는 것은, 특히나 성공한 해적이 되는 것은 사람을 홀리는 황홀한 매력이 있다. 커다란 자동차를 몰고 매출 좋은 상점들을 몇 개씩 운영하고 근사한 파티를 열면서 그야말로 폼 나게 사는 해적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가로웨 시민들 중에 적지 않다. 69쪽
제3장 아수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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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중부의 650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도 쓰나미를 피하지 못했다. 하푼 해변을 뒤덮은 쓰레기들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다가 엄청난 쓰나이에 휩쓸려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또한 쓰나미는 300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가옥 수천 채를 파괴했으며, 대략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소말리아인들을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었다. 유엔 관계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도 소말리아인들과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은 다 뭐고, 도대체 어디서 온 것들인가?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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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조사관들이 하푼 해변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꼼꼼히 살핀 결과, 소말리아에서 나온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하푼 해변에 쌓인 쓰레기 더미는 서구 세계의 폐기물이었다. “소말리아 연안의 유해 폐기물 투기는 1980년대에 시작되어 내전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방사성 폐기물, 납, 카드뮴, 수은, 산업 폐기물, 병원 폐기물, 화학 폐기물, 가죽 가공에 쓰이는 약품, 기타 유독성 폐기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폐기물 대부분은 컨테이너 또는 소형에서 탱크 크기까지 다양한 일회용 통에 담긴 채 그대로 연안에 버려졌다. 현지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 파괴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었다.”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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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관들은 ‘유해 폐기물 처리에 관한 계약’이 오래도록 지속된 소말리아 내전이 한창인 시점에서 논의되고 타결되었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라고도 지적했다. 협상을 통해 체결된 계약들이라니? 그런 계약의 존재야말로 외국 기업과 소말리아 관료들의 부도덕과 부패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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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에서 만난 유엔환경계획의 닉 누탈이 한 말이다. “유럽 기업들은 그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비용이 아주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폐기물 처리 비용은 유럽에서 1톤에 250달러 정도지만 소말리아에서는 2.5달러 밖에 안됩니다. 더구나 무엇이든 버릴 수 있지요. 발견된 폐기물은 실로 다양합니다. 우라늄 방사성 폐기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납도 있습니다. 카트뮴과 수은 같은 중금속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많지요”.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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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알피가 소말리아인 소유 기업의 어선에 실린 다량의 폐기물이 이탈리아로부터 이탈리아의 옛 식민지인 소말리아로 운반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이 기업은 예전에는 소말리아 정부 소유였고, 지금은 현직 의원의 수중에 있습니다”.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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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렌은 1990년대 중반까지 소말리아 영해에서 조업하는 외국 어선들이 어업권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썼다. 만약 선장이 비용 지불을 거부하면 소말리아인들이 배를 나포하는 식이었다. 알피가 킹콩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보사소 항구에서는 나포된 트롤선들이 몸값 지불을 기달리고 있었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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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유엔 평화 유지군이 완전히 철수한 뒤로 운영되지 않던 모가디슈 공항과 모가디슈 항구를 다시 열었다. 이슬람법정연대는 푼틀란드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뒤 해적질을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일로 규정하며 금지했다. 한동안은 소말리아 연안에서 해적 행위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2006년 말 이슬람법정연대가 최신 무기로 무장한 에티오피아군의 침략을 받아 무너지자, 남아 있던 이슬람주의 군벌들은 기독교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지하드를 선포했다. 87쪽
제4장 소말리아 해적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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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두 달 동안 소말리아 영해에서 해적 행위가 급증했다. 소말리아 해적 행위는 주로 불법 조업 어선들을 공격하던 지역적인 문제로부터 조직적이고 치밀한 일종의 사업으로 발전했으며, 그 비약적인 팽창은 해상 운송 전체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감시단의 2008년 보고서 내용이다. “쉽게 큰돈을 버는 특성 때문에 자금과 인력이 몰려들면서 해적들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바다를 떠도는 오합지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충분한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효율적으로 활동하는 중무장 범죄 조직으로 변모했다. 수백 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조직들이 소말리아 북동부와 중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군사력과 자금 면에서 소말리아 당국에 필적하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조직들도 있다”.(유엔 안보리 보고서)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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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연안의 혼란과 무질서는 가중되고 있었다. 700명 정도였던 해적의 수는 이제 1500명 정도로 증가했다. 그들은 빼앗은 선박을 해적 활동을 위한 모선으로 삼아 더 많은 선박들을 공격했다. (중략) 이런 광경을 보며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 의문이 있다. 해적들이 너무나 짧은 기간 사이에 능수능란한 전사가 된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가지 답은 해적 가운데 일부가 외국계 보안업체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으리라는 것이다. 유엔 조사단은 이에 대해 2000년 무렵부터 푼틀란드의 신생 해안 경비대가 영국계 기업인 하트해상보안서비스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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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감시단은 이미 2003년 보고서에서 이런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외국 어선들로부터 소말리아 해역의 어자원을 보호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하지만 푼틀란드 당국이 조직한 ‘해안 경비대’ 활동이 실제로는 지방 정부와 군벌들의 무기 금수 조치 위반을 합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위험도 적지 않다. 또한 외국 선박에 어업권을 주는 대가로 허가증을 판매하는 행위가 대규모 폭력단의 갈취 형태를 띠게 되면서 사실상 일반적인 해적 행위와의 차이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1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