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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국의 개척민 지원자들이 신대륙 원정에 나선 것은 금에 대해 가졌던 이런 맹목적 집착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미국 역사 내내 끊임없이 출몰하게 될 테마, 즉 그럴듯해 보이는 작은 현실 조각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허구적인 희망사항-혹은 두려운 대상-을 멋대로 창작해내고는 그걸 현실이라고 열렬히 믿는 습성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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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친슨은 그냥, 너무나도 미국적인 미국인이었다.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직관 및 현실에 관한 특이하고 주관적인 이해에 대해 너무도 자신만만해 했으니까. 또한 주변의 의구심 많은 지식인들과 달리 그녀는 애매모호함을 인식하거나 자기회의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너무나 미국적인 인물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자신의 지각과 믿음이 사실이었던 이유는 그녀 자신이 그것들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며 그런 것들을 완벽하게 사실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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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극단적 상대주의는 종교를 넘어 거의 모든 종류의 열정적인 믿음으로 퍼져나가기에 이르렀다. 내가 무언가를 진리라 생각한다면 그 이유나 객관적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은 진리이고, 그 어느 누구도 내게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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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케인리지가 미국 기독교의 우드스톡이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사고와 행동 방식, 즉 오래토록 살아남을 새로운 하위문화를 다지고 상징하는 대규모 구경거리가 펼쳐지는, 무질서하고 유래 없는 어느 8월의 한순간이었다고 말이다. (중략) 1800년대에 그처럼 광범위한 지역에서 그토록 자주 일종의 대규모 시장이 열리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무이했다. 1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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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고 진리에 대한 특별한 접근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세운 나라, 즉 거대한 환상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세워진 나라다. 근대에 다른 나라에서는 조지프 스미스 같은 사람이 나타난 적이 없다. 1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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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초기에 가장 중요한 판결 중 하나를 내린 이 재판에서 미국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고소인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판결했다. 남의 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한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판매자건 구매자건 자유시장 체제에서는 각자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는데, 이는 요컨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 말하지 않는 행동이 면책을 받은 셈이었다. 1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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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존재의 골수까지 깊숙이 맛본 800일을 보낸 뒤 그는 도시로 돌아와 부친의 연필 공장 일을 도우며 남은 평생을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아버지 소우의 저택에서 살았다. 소로는 달콤한 면만 부각하여 보기 좋아하는 미국적 환상의 전형, 즉 지나치게 불편하지 않은 만큼만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몸소 시현해 보인 인물이다. 1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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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는 새로운 유형의 향수병이 미국인들의 중요한 심리적 특징으로 등장했다. 전혀 겪어본 적 없고 때로는 존재한 적조차 없는 시공간에 대해 가상의 그리움을 느끼는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 미국인들이 '옛 시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기 전의 초창기 미국에 대한 향수는 미국 민주주의의 동력이 되었다.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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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사고에 빠진 미국 사람들은 근대가 승리를 선언한 마당에도 자신의 사고방식을 절대 고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이 의지했던 것은 옛 신교도나 청교도적 반사 반응, 다시 말해 만약 타락한 엘리트들이 신앙인들에게 오만한 열성당원이라는 오명을 덮어씌우고 시대에 뒤떨어진 믿음을 고수한다며 박해하려 든다면 신앙인들은 더 강렬한 믿음으로 응수할 것이라는 식의 생각이었다. 1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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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비롯한 이 지역의 후원 집단은 즉시 이것이 중대한 기회임을 직감했다. 시골 마을인 데이턴을 지도 위에 올려놓는 동시에,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과학과 근본주의를 한꺼번에 대대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말이다. 그들은 다른 젊은 이주자-1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던 존 스콥스-에게 일부러 기소를 당해 재판을 받으라고 설득했다. (중략) 요컨대 진화론 교육 금지법이 실행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아 '테네시주 대 존 토머스 스콥스 사건'이 일종의 쇼를 위한 재판으로 기획되어 벌어진 것이다.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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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은 에솔렌이 막 세워졌을 때 "광기는 잠재적 해방인 동시에 부뢀이다"라고 썼다. 그에게 정신병이나 조현병은 어쩌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거부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입회식이며 정상성이라 부르는 끔찍한 소외 상태를 치유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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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은 기억한다>는 돌출적인 책이 아니라 거의 일개 장르의 원형이 되었다. 그 이후로 수많은 표절 작가들이 최면요법을 통해 자신이 아이들을 강간하고 아기를 키워서 죽이는 사탄숭배자들의 희생자라고 선언하는 책을 써냈기 때문이다. 5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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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파의 신학은 미국 대형 교파의 신학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는 코레시를 '사이비 종교 지도자'라고 부름으로써 그를 찰스 맨슨이나 짐 존스 같은 예외적 인물로 취급하고 맘 편히 무시해버린다. 그러나 그의 교회가 150년의 역사를 가진, 개신교 분파 중 가장 오래된 하위분파이자 미국에서 가장 큰 20개 교회 중 하나이며 신도 수가 6000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5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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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환경과학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하필 판타지랜드의 문이 전면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2000년대 초에 인식하고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관해 공식적으로는 합리적인 태도를 취했다.2008년까지만 해도 공화당은 강령에서 '기후변화'를 열세 차례나 언급하면서 이것이 '인간의 경제 활동'으로 야기되었다고 규정했고 '이 도전을 다루기 위해 장기적으로 석유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4년 뒤 그들은 기후변화라는 것을 아예 부정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5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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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백인 기독교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미국에 대한 강력한 세속적 전망이 없다. 공화당 지지자의 3분의 2는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한다(그리고 전 미국인의 다수가 '헌법엔 이미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고 믿는다). 나는 미국이 절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의 기독교 버전 국가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미 터키처럼 공식적으로는 세속국가를 표방하지만 명백히 종교적인 정당이 운영하는 나라에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5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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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뉴욕타임스>에 실린 또 다른 사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트럼프는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큼은 다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널리 받아들여진 사실에 기초하여 만들어지고 공유된 공적 현실이 와해되는 것은 곧 위험요소가 아닌 기회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6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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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꿈에 사로잡힌 환상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세상이었다. 누군가는 종교적 환상에 빠져서, 또 누군가는 벼략부자의 꿈을 꾸면서 이곳으로 모여들었지만 기이하게도 모두가 경이로움에 굶주려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마법과 운명에 대한 열렬한 믿음을 넘어 미국인들이 가진 유난히 강력한 종교적 DNA는 그들의 다른 정신적 습성을 규정하는 근원이기도 했다. 신비로운 것에 대해 아무 상상력도 발휘하지 않고 그저 글자 그대로 의미에 매달린다거나, 엘리트로부터 박해받을 가능성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6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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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최초의 개신교 기획국가일 뿐 아니라 최초의 계몽주의 기획국가이기도 했다. 두 가지 요소는 서로의 성장을 부추겼는가 하면 때로는 서로 결합함으로써 독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67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