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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의 작은 역사

완독일
2021/08/08
카테고리
케이팝
비즈니스
작가
김성민
출판사
글항아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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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케이팝을 아이돌 중심의 천편일률적인 문화 상품으로 치부하고 한국의 문화적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의 반대편에 그 자체로 한국의 현대적 문화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둘째, 아이돌이 주도하는 케이팝을 외국시장용으로 생산된 수출 상품으로 규정하고 한국 대중음악의 주변부에 위치 지으려는 입장과 한국 음악산업의 구조를 재편하고 글로벌화를 견인한 주역으로 평가하는 입장이 공존한다.
첫째, 한쪽에 ‘케이팝=아이돌’로 보고 그 음악적 빈약성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좀더 다양한 음악 장르를 통해 케이팝을 파악하려는 이들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익숙한 요소들도 케이팝이라는 필터를 거치면 전혀 새로운 느낌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케이팝의 무엇이 새로운가’가 아니라 ‘케이팝은 어떻게 새로운가’다. 무엇이, 어떻게 케이팝을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가. 왜 그것들은 새로운가.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음악적·산업적·사회적 감각이야말로 ‘K’와 ‘팝’이라는 두 개의 욕망을 매개하는 것이며 ‘지금 여기’의 케이팝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쇼 프로그램이 가수들의 뛰어난 가창력이나, 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해 오락적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현란한 무대배경, 출연자의 호화스러운 의상 및 장신구, 그리고 무용수들의 산발적인 율동에 의존함으로써 전반적으로 퇴폐적인 유흥 분위기가 표출되어 소득 계층 간의 위화감을 조장할 우려가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공개방송 또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쇼 프로그램의 경우 10대들이 주류를 이루어 열광하는 방청석을 방송 화면으로 구성함으로써 지나치게 소란스런 분위기가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바 이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_『방송심의평가서』(방송심의위원회, 1987)
10대 팬들의 열광적 지지, 화려한 댄스 퍼포먼스, 지금까지 없었던 최신 유행의 리듬과 사운드가 섞인 무대…… 이 기사는 소방차를 ‘새로운 비디오형 가수’로 규정하면서 마이클 잭슨과 비교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음악에 미국형 아이돌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는 적절한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소방차와 비교해야 하는 대상은 이 기사의 시야에는 들어 있지 않은 일본형 아이돌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팝 음악의 감각 그 자체가 일본형 아이돌의 감각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 일본 아이돌은 물론 제이팝 전반의 감각이 세계적 흐름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 반면 한국의 뮤지션과 대중은 이 시기부터 좀더 세련된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포함한 ‘팝의 감각’을 추구하게 되었다.
블랙뮤직과의 만남은 한국 아이돌이 일본형에서 미국형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지금의 케이팝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계기였다. 랩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핵심적인 요소다.
지금의 케이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표현 양식인 ‘한국어 랩’은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현진영과 와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에 의해 한국 대중음악에 도입되었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미 10대 시절 그룹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서태지는 10~20대를 타깃으로 ‘대중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힙합과 록이 섞인 사운드에 한국 전통악기와 랩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해나갔다. 또한 구세대와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성 있는 가사를 과감하게 담으면서 수십 년간 국가 검열에 익숙해져 있던 대중음악계와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교육 문제(〈교실이데아〉), 통일 문제(〈발해를 꿈꾸며〉), 청소년 문제(〈컴백홈〉) 등 서태지가 던진 여러 주제에 한국사회는 뜨겁게 반응했다. 특히 1995년 발표한 마지막 앨범의 수록곡 〈시대유감〉의 가사에 대한 음반 사전심의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그들이 이룬 가장 큰 음악적 성취는 현대적인 감각 위에서 ‘한국팝’의 프레임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레임’이란 모든 장르의 이질적인 사운드도 ‘한국팝’으로 소화하는 음악적 특수성을 의미한다. 그 이전 세대의 음악은 해외 팝 음악을 어중간하게 모방하면서 오히려 그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젊은 싱어송라이터들은 그러한 관행과 거리를 두고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다양한 사운드를 억압 없이 수용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하고 변주했다. 그럼으로써 미국과 일본 팝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한국팝의 음악적 프레임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 프레임 속에서 한국팝의 사운드와 리듬,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패션과 메시지, 생산 주체(뮤지션)와 소비 주체(팬)의 관계에 이르는 모든 요소가 재구축되었다. 그것은 케이팝의 ‘K’가 한국가요에서 벗어나 음악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