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 중국 황제의 산재사망률이다. 진시황 이래 282명의 황제 가운데 암살, 찬탈, 사고, 강요에 의한 자살 등으로 곱게 죽지 못한 게 거의 절반인 130명이다. 마오쩌둥이 그 고된 국공내전 중에도 '자치통감'을 17번이나 읽었다는데 그만큼 중국의 지배자 노릇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에서도 최고 지도자 궐위는 대형 사건이다. 하지만 국가 체제를 뒤엎을 순 없다. 미국은 대통령이 4명이나 암살 당했지만 곧바로 부통령이 권력을 이양 받았다. 잘 구축된 현대 국가는 지도자 정도는 사라져도 문제 없이 굴러간다. 현대 국가에서 대통령의 목숨은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지 못한다.
당국가 체제인 중국은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다.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통치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선거로 뽑힌 공직자가 정부 체제 안에서 역할을 맡는 민주주의 국가는 이 문제가 말끔한 것과 다르다.
중국은 국가 위에 당이 있다. 중국공산당이 대륙을 통치하는 건 1940년대 내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년 전에 승리했다는 이유로 특정 집단이 독점적 통치 권한을 갖는 건 적어도 현대 국가에선 이상한 일이다. 그런 논리면 외국 점령군과 다를게 없다.
1949년 개국 이래 마오쩌둥의 카리스마에 의존한 중국은 이후 경제발전에서 집권 정당성을 찾았다. 중국은 정권이 달리는 자전거에 올라탄 불안한 모습인 셈이다. 정권이 곧 국가인 취약한 체제는 '성과'에 정당성이 결정되는 불안한 체제를 만들었다. 미국의 경기침체가 온다고 해서 미국인이 '미국'이라는 국가를 부정할 일은 없다.
중국은 최고지도자나 중국공산당의 명운과 국가가 확실히 분리되지 않은 것이다. 황제의 암살로 왕조가 무너지고 국가까지 멸망하는 고대 국가 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정부 시스템 안에 집권 세력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체제의 한계다.
중국의 또 다른 딜레마는 법치와 재량권 문제다. 뛰어난 관료와 그들이 이끄는 성장 정책은 중국식 자본주의 핵심이다. 그 수단이 재량권이다. 하지만 재량권은 법치와 모순된다. 법치는 정책 결정자의 재량을 축소하는 일이다. 법치를 강화할수록 공산당 핵심의 영향력은 줄어든다.
국가 주도 경제 체제에서 관료의 부정부패는 일종의 인센티브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이 자유롭게 주도하는 경제 성장을 정부가 주도한다. 그러려면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그 인센티브가 '유능한' 관료의 막대한 축재다. 만약 축재를 모두 막으면 관 주도 성장의 동력이 떨어진다.
중국은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장을 늦출 수 없다. 그러면서도 늘어나는 부패와 양극화에 대한 민심 이반도 대응해야 한다. 다른 국가에선 이런 어려운 과제에 실패하면 정권 교체로 끝난다. 하지만 중국은 국가의 근간이 이 어려운 딜레마 위에 서있다.
2030년 전후로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규모를 갖게 될 건 거의 확실하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4%로 아주 낮게 잡아도 예상되는 '산수'다. 문제는 그래봐야 중진국 함정의 강한 구심력과 싸우는 개발도상국일 뿐이라는 점이다. 지금 중국은 도농격차, 고령화, 보건의료, 교육인프라, 환경까지 잡다한 문제를 고성장으로 덮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어느 국가도 피할 수 없다. 지금처럼 몸이 가볍고 민첩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책에선 중국 고성장의 비결을 7가지로 꼽는다. ①자본주의로 전환 ②세계화 ③화교 네트워크 ④인구 보너스 ⑤도시화 ⑥저축률(투자율) 증가 ⑦교육이다. 이 가운데 지금도 작동하는 카드는 교육 뿐이다. 나머지는 이미 활용했거나 최대치에 달한 요소다. 도움닫기 판이 거의 다 사라진 상황이다.
경제 성장도 생각보다 느려질 수 있다. 2006~2011년 3.3%였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2012년 이래 1%대로 주저 앉아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고정자본투자를 막대하게 늘려서 과잉투자 상태다. 이를 돌려 보려고 쌍순환 경제나 내수중심을 표방했지만, 신흥 제조업 국가가 내수 국가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사례는 많지 않다.
중국에 대해선 최대한 건조하게 봐야한다. 커진다고 해서 막연히 패권국이 될거라고 예단할 것도 아니고, 순식간에 망할거라 보는 것도 과하다. 말레이시아, 타이처럼 중진국 함정의 기로에 선 국가다. 여기에 '성과'로 집권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취약성을 가진 국가다. 최악인 대외 관계를 고려하면 핸디캡은 더 크다.
다시 처음 언급한 황제의 산재사망률 얘기로 돌아가서, 시진핑 주석이 관심 있을 '안전 퇴위'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뭘까. 가장 효과적인 건 후계자 지정이다. 후계자를 미리 정한 황제는 산재사망 확률이 64%나 적었다. 역사에 밝기로는 빠지지 않는 덩샤오핑이 격대지정을 확립한 게 괜한 게 아니다.
태생적 딜레마를 극복하는 건 오랜 도광양회 뿐인데 너무 빨리 일어섰다. 타이완으로 집권 정당성을 찾으려 할 수 있지만, 타이완의 지형과 국방력을 고려하면 아프간보다 더한 수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의 조바심은 국가의 명운도, 본인의 안위도 모두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이전에 한 번 포스팅한 ‘중국경제에 대한 127가지 질문’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를 담고 있는 좋은 입문서다. 의아할 만큼 중국에 편향적인 글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느낌. 종합적인 중국의 오늘을 이해하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