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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9%의 마법

날짜
202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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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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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에서 K는 '성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주민들은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기도 하고, 이미 성 안에 있다고도 한다. 이런저런 답을 듣다보면 성 안에 있는 건지, 밖인지도 헷갈린다.
어느 나라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비슷하다. 인간의 인식 수준에서 한 국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나고 자란 모국에 대해서도 그렇다. 특히 중국 같은 나라는 아주, 아주 큰 성이다. 큰 데다 접근성도 떨어져 정보도 적다.
<보이지 않는 중국>를 쓴 미국인 학자는 책 전반에서 마치 중국 관리를 달래듯이 자신의 선의를 강조한다. 또 이 책을 즐겁게 소비할 중국 혐오를 가진 대다수 독자와 선을 그으려 노력한다.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드물게 꽤나 객관적인 자리에서 중국을 이야기 하고 있다.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질거냐, 는 쉰 떡밥이다. 오죽하면 중국공산당이 이 용어에 사용 금지를 내릴 만큼 징글한 주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토론에서 크게 다루지 않던 부분을 짚었다. 선진국으로 가는 '열쇠'는 고등학교 취학률이고, 중국은 이게 엉망이란 얘기다.
지금 중국에 대한 토론은 대부분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미중 기술 경쟁의 여파다. 기술 재제에 무너진 화웨이를 얘기하면, 반대편에선 국제특허출원 건수 1위인 중국의 실적을 말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과 매년 쏟아지는 600만명의 이공계 인재는 중진국 함정과 거리가 먼 모습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노동인구 중 고등학교 졸업자의 비율이 50% 이하인 나라가 선진국이 된 사례는 없고, 중국은 겨우 30%라고. 설명도 직관적이다. 1만불 이상의 고도 경제로 갈 때는 산업 구조의 변화가 매우 빨라진다. 여기에 적응하는 복원성은 '배우는 법'을 배우는 고등학교에서 쌓는다.
고도 경제로 가는 과정에선 '탈피'가 이뤄진다. 임금 상승 여파로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높은 생산성의 직종으로 노동자가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적응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비정규직이나 지하경제로 내몰린다. '근면성'이 중요한 경제에서 '적응력'으로 초점이 옮겨간 결과다.
이 문제는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국공산당이 돈을 쏟아 붓더라도 시간을 돌릴 순 없다. 중국공산당은 바보가 아니기에 2010년대부터 고교 진학률을 매우 높여서 지금은 80%대다. 하지만 중국의 '모든' 노동력의 품질을 바꾸는 일이기에 최소 45년이 걸린다고 한다.
왜 이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서구나 한국, 일본의 인식 구조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가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가 아니었을까? 중국처럼 멀쩡한 나라가, 그것도 타이거맘의 본산인 중국이 교육 때문에 위기라니.
한국 생각이 났다. 한국은 '왜' 이 함정을 피했을까? 일단 운이 좋았다. 마오쩌둥과 문혁이 한국엔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20.79%'의 마법이다. 한국은 1972년 법으로 내국세의 20.79%를 '반드시' 교육재정교부금으로 쓰도록 못박았다. 그렇게 가난하고 돈 들어갈 곳 많은 시대에, 내국세의 5분의 1을 강제로 교육에만 쓰게 한 건 대단한 결정이다.
또 다른 행운은 90년대 대학 설립 자율화다. 지금은 대학 부실화의 주범이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1만불 시대에 고교 교육이 필수이듯 4만불 시대엔 대학 교육도 필수다. 80년대 겨우 20%였던 대학진학률은 90년대에 무려 80%까지 치솟는다. 만약 2000년대에 대졸자가 쏟아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고도화한 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개발자 구인 대란이라고 하지만, 몇년 만에 수없이 많은 프로그래밍 재교육 과정이 생기면서 인력 공급이 늘고 있다. 빠른 적응이 가능한 건 기본적으로 '보편적 고등교육'을 이수한 대졸자 풀이 넓은 덕이다. 대졸 취업자에겐 고통이지만,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선 뛰어난 인력풀의 혜택을 누리는 셈.
지금도 이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지금 학자금 대출 금리는 1.7%(!)다. 사실상 인적자본에 보조금을 뿌리는 셈. 올해부터는 대학원생도 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10여년의 등록금 동결로 고등교육비는 매우 싸다. 중등교육에만 쓰던 교육재정교부금은 이제 고등교육에도 쓸 예정이다.
책은 한국에서도 팽배한 '직업 교육'에 대한 환상도 짚는다. 고도 경제에서 필요한 역량은 배우는 법을 배운 제너럴리스트다. 수리, 컴퓨터, 독해 등 보편적 역량이 중요하다. 직업 교육은 기능을 가르치는 곳이다. 수시로 산업 구조가 변하는 고도화한 경제에서는 적응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반대로 앞으로 직업계고 비율을 30%까지 높일 계획인데, 국민 소득이 늘수록 제조업은 점차 축소될거라는 걸 고려하면 거꾸로 가는 일이다. 무엇보다 '기술 배워야 먹고 살지'라고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기 자식은 인문계고를 보내서 좋은 고등교육까지 마치길 바라지 않나. 이런 시각은 계급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여하튼 <보이지 않는 중국>은 중국에만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도 충분히 좋은 책이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고, 밑줄도 가득 쳤다. 무엇보다 이렇게 좋은 책을 내놓은 곳이 (아마) 1인 출판사라는 게 놀랍다. 편집이나 번역 모두 좋은 책. 중국 욕하고 싶으면 <중국의 조용한 침공>을 보면 되고, 이해하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