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일은 '지적 낮잠'이다. 여행이라기엔 더 한가하고, 한잠 쉬는 느낌. 자주 읽는 게 과학책인데, 이건 '지적 체조'다. 주식인 사회과학 책은 모든 게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반면 과학 책을 읽다보면 번잡한 집을 정리하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생물학을 가장 즐겨 읽는데, 한번도 글을 쓴 적은 없다. 문과가 과학이나 동양철학 읽고 쓴 글은 대체로 해롭다. 문외한이 이미 갖고 있던 주관에 끼워맞춰서 이상한 글을 쓰기 좋기 때문. 그럼에도 한번은 말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전략가, 잡초>라는 책이다.
기이한 책이다. 잡초학자를 자처하는 일본인이 잡초에 대해 썼다. 잡초가 뭔지에 대해서부터 막힌다. 잡초가 뭐지? 답이 오묘하다. '인간이 바라지 않는데서 나는 풀'이라고 말한다. 허술한데 그럴싸하다. 잡초는 이렇게 인간이 규정하는, 인간과 엮인 풀이다.
잡초는 왜 그렇게 없애도 없어지지 않을까. 인간이 뽑아서다. 황당한 얘긴데, 잡초는 식물 중 특출난 게 없는 약자다. 잡초→큰 풀→나무→숲으로 환경이 번성(천이)해가면 키작고 뿌리 약한 잡초는 사라진다. 그런데 1년마다 인간이 리셋을 해주니, 그 틈으로 자라는게 잡초라는 거다.
잡초의 가장 중요한 전략은 인내심이다. 영국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1제곱미터 밭에 잡초의 씨앗이 대략 7만5000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중 싹을 틔우는 건 극소수뿐. 대부분은 버틴다. 그러면서 고개를 드는 시점을 묵묵히 기다린다.
그러면 언제 고개를 들까. 우선 빛. 식물의 잎은 빨강, 파랑을 흡수(그래서 초록으로 보임)한다. 그러면 키 작은 잡초 씨앗에 이 두가지 빛이 닿지 않는다는 건? 머리 위에 큰 풀이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잡초는 이 빛을 감지할 때까지 몇 년이고 버틴다. 광센서가 달린 잡초라니.
빛만 없다고 바로 치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온도도 중요한데, 일정 온도가 넘는다고 바로 싹을 틔우지도 않는다. 한겨울인데, 잠깐 찾아온 이상기온일수도 있으니. 그래서 따뜻해져도 며칠을 두고 본 후 '진짜' 봄이라는 게 확실해지면 고개를 든다.
가히 사람보다 낫다. 계좌에 예수금만 있으면 뭐든 매수하고, 차트가 조금만 올라간다치면 '지금이니?' 하면서 베팅하는 우리네 삶과 비교해보면.
또 다른 핵심 전략은 다양성이다. 유럽 전역에서 토끼풀이 자란다. 그런데 북유럽 토끼풀은 독성이 없고, 남유럽에선 있다. 남유럽에는 토끼풀을 먹는 달팽이가 있어서다. 이 달팽이 때문에 독성이 있는 토끼풀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사라졌다.
만약 토끼풀이 독성이 없는 종만 있었다면 북유럽에만 살았을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무기로 로컬라이징 된 존재가 살아남는다. 골프장의 천적인 새포아풀은 페어웨이와 그린에서 자라는 개체가 다르다. 그린이 더 잔디를 낮게 깎으니, 여기에 맞게 키작은 개체가 자란다.
잡초는 인덱스 펀드 같은 존재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니 유전적 다양성이 극대화하고, 여기서 살아남는 잡초가 대대로 유지된다. 그 대척점에 선 게 인간이 키우는 작물. 인간이 거르고 거른 엘리트 식물인 이들은, 강하지만 다양성이 적다. 당장 아웃풋이 뛰어나지만, 재앙이 오면 그걸로 '끝'일 수도 있다.
대체로 잡초는 루저지만, 자기가 자리 잡은 곳에선 승자다. 보도블럭 틈새 사이 같은 니치 마켓에서 경쟁하지 않고 독점하는 것. 작아보여도 거기서 최선을 다하는 스타트업을 보는 것 같다.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고 하는 피터 틸의 교훈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게 잡초다.
다양성을 지키고, 경쟁하기보다 각자의 영역을 나눠 살면서 누구나에게 각자의 시간을 허락하는 것. 잡초 뿐 아니라 생물계를 다룬 책을 읽으면 항상 도달하는 결론이다. 의외로 진화는 전쟁보다 적당한 하모니와 피드백의 연속이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여긴 모두가 1등 벼가 되는 길 밖에 없다. 니치가 없다. 하지만 개체의 대부분은 잡초다. 태어날 때부터 엘리트 벼가 아닌 걸. 우리는 작물이 아니다. 개인도 스타트업도 투자자도 잡초에 배울 게 많지만, 일단 사회가 배워야 할 게 정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