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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빌라에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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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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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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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살던 오피스텔을 떠나 며칠전 빌라로 이사했다. 이곳에 살다보니 몇가지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대단지 아파트와 빌라는 '헬조선 담론'을 제대로 은유하는 공간이다.
우리가 아파트에 '대단지'를 굳이 붙여 부르는 이유는 '대단지'가 아파트의 삶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수천 명의 주민이 한 울타리에 사는 아파트는 독서실과 헬스장을 단지 내에 둘 수 있다. 함께 고용한 경비원을 두고 관리사무소가 민원과 잡다한 업무를 돕는다. 대단지라 가능한 일이다.
빌라에는 앞서 나열한 모든 편의시설이 없다. 겨우 수십 가구가 모여 살기 때문에 그만한 여력이 없다. 하지만 빌라 주민도 누릴 수 있어야 할 인프라다. 독서실은 도서관, 헬스장은 주민체육시설, 경비실은 파출소, 관리사무소는 주민센터가 할 역할이다. 열거한 교육·건강·치안·행정 서비스는 '보편적으로' 누릴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주민센터에 가면 온갖 민원에 압사 당하는 공무원이 앉아 있고, 도서관은 마을버스로 몇 정거장을 가야한다. 도로에는 '여성안심귀갓길'이라고 써있는데 "알아서 정신 바짝 차리고 집 가쇼"라는 의미다. 주민 커뮤니티의 사각지대를 메워주는 건 동네 교회 뿐이다.
결국 끝없이 가격이 치솟아도 사람들이 대단지 아파트에 열광하는 건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인프라가 황폐하다는 반증이다. 빌라와 아파트 사이의 가격 차는 건축비 등의 물리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증발한 공공성에 치르는 값이다. 헬조선 담론의 핵심은 '부족한 공공성을 대신하는 개인의 각자도생'이다.
빌라와 아파트의 차이 중 또 하나는 정치적 영향력이다. 서울 강남구청은 1000명의 구민이 동의하면 구청장이 답변하는 '천명청원제'를 운영한다. 제도 도입 이래 이 기준을 넘긴 청원이 딱 5건인데, 이 가운데 1건을 뺀 4건이 특정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움직여 1000명을 달성했다. 심지어 특정 단지 구민상담사 해촉 촉구 청원도 있다. 공통된 이해를 공유하는 주민 조직의 힘이다.
이건 집단행동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업무용 계정으로 구청장들 동향을 받아보면 주무대 가운데 하나가 아파트 단지 행사다. 그럼 정치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 빌라 같은 서민 거주지를 무시하냐, 하면 이는 순전히 효율성의 문제다. 수백명의 주민이 오가는 아파트 바자회와 간간이 주민들이 지나다니는 빌라촌 골목 가운데 전자를 선택하는 건 자연스럽다.
이렇다 보니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세울지도 예상된다. 이는 '인프라의 부족'을 '인프라의 편중' 문제로 악화시킨다. 정치적 영향력도 큰 아파트는 단위 면적당 주민수까지 많으니 인프라를 설치할 때 효율성의 허들까지 쉽게 뛰어넘는다.
그 결과 아파트 주민은 단지 안 독서실과 정문 앞에 도서관을 골라 다닌다. 빌라 주민은 걸어서 10분 내에 엉덩이 붙이고 책 읽을 곳이 하나 없지만 말이다. 아파트는 알게 모르게 블랙홀처럼 편의성을 빨아들인다.
주택 구입 자금의 차이로 갈렸던 아파트와 빌라 선택은 빈부 격차를 드러낸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문제를 겪다 보면 아파트와 빌라 사이에 '빈부 장벽'이 서는데, 삶의 질 문제가 자산 가격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동네에 다닐 운동시설이 있느냐 없느냐로 시작된 차이가 수십년이 지나면 중산층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벌어진다.
가난에 붙는 이자도 격차를 벌린다. 50만원을 내고 금니를 씌우면 10년은 너끈히 버티지만 빠듯한 사정으로 10만원을 주고 1년 갈 레진 치료를 받는다. 매월 10만원을 내고 건물을 열심히 관리하면 관리비는 훌쩍 넘는 감가상각액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소득에 여유가 없는 이들은 몇년 뒤 더 큰 자산의 손해를 겪고 격차는 커진다.
공정한 게임은 팀전이면 팀 대 팀, 개인전이면 개인과 개인이 붙어야한다. 그런데 팀과 개인이 붙으면 불공평하다. 아파트와 빌라의 게임이 그렇다.
그 많은 아파트와 빌라를 이렇게 후려치냐며 부동산 전문가는 질겁할 얘기다. 이건 어차피 우화다. 조직 노동도, 대기업도, 어쩌면 서울로 이름을 바꿔도 성립하는 이야기다. 사회의 많은 문제가 갈수록 좌·우에서 조직과 비조직의 문제로 변해간다. 하지만 정치의 형태소는 여전히 조직이라는 게 문제다.
암담한 건 우리의 선택지는 (이제 보니) '레미안파'와 '자이파' 정도인데, 그들의 해답이라는 게 "그러니까 불평등의 상징인 대단지 아파트를 더 만들지 말자"와 "꼬우면 아파트 가던가" 수준이라 것. 그러니 레버리지 최대로 땡겨서 재개발 상가 사는 게 청와대 공인 최고의 노후 대책이겠지만.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