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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티브와 싸우기

날짜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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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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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량 부족으로 개학을 코 앞에 둔 교사도 접종이 밀린 와중에 조용히 이달 내에 접종을 끝낼 10만명이 있다. 이번 9월 모의평가에 지원한 자칭 '재수생'이다. 지난해 7만명이던 9월 모평 지원자는 올해 갑자기 30% 넘게 뛰었다. 9월 모평을 앞두고 교육부가 지원자 모두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화이자 백신을 놔주겠다고 광고한 결과다. 적어도 3만명은 백신을 맞으려고 허수로 응시한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7월부터 모든 응시자에게 백신을 놔주겠다고 홍보를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접수 전부터 이거 문제있다는 기사가 쏟아지니 '그때(8월)면 일반인 접종할 백신은 충분하니까 무제한으로 접수 받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약속의 8월이 되고 보니 백신은 당장 고위험군인 50대와 개학을 앞둔 교사 2차 접종도 미뤄야 할 만큼 빠듯해졌다. 이 와중에도 눈치 빠른 3만명은 하루도 밀리지 않고 우선 접종을 마쳤다.
부처를 가릴 것없이 이런 인센티브를 간과하는 정책이 너무 많다. 사람들의 인센티브를 거스르는 정책은 내리막길에서 차를 미는 짓과 같다. '조금이라도 빨리 화이자 백신 맞고 싶다'는 욕구를 무시한 대가로 최소 3만명의 급하지도 않은 접종자에게 백신을 허비하게 됐다. 백신만 허비한게 아니라 온라인 접수 받는다고 대형학원들은 서버 열어두고, 교육청은 오지도 않을 응시자 수 맞춰 시험장 확보하느라 난리다.
더 나쁜 건 인센티브와 특혜를 구분하지 못하는 태도다. '저신용자가 왜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하냐'는 소리를 하는 이유는 고신용자의 저금리를 '특혜'로 보기 때문이다. 고신용자가 낮은 금리로 대출 받는 건 사회적으로 높은 신용을 유지하게 만드는 인센티브다. 실제로 일부 은행에서는 신용등급 1~3등급인 차주보다 신용이 낮은 사람이 낮은 금리를 적용 받는다.
이런 신용-금리 인센티브를 무시하는 정책이 저신용자 대출 우대 정책이다. 금융 당국에서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라고 지도하면 은행은 고신용자 대출을 줄인다. 고신용자 대출을 줄이면 비율(%) 상으로는 중신용자 대출이 늘기 때문. 이렇게 대출의 위험성이 커지면 은행은 돈을 쌓아두고 풀지 않는다. 그럼 일부 저신용자는 특혜에 가까운 저금리 대출을 받고, 대다수의 저신용자와 고신용자는 대출서 밀려난다.
정부가 해야할 건 시민들의 인센티브와 싸울 게 아니라 최대한 여기에 부응하는 일이다. 중저신용자에게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싶으면? 통화 공급을 더 화끈하게 늘리면 어련히 금리는 내려간다. 델타 변이가 퍼진 이 난리통에 눈에 불을 켜고 금리를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중신용자 대출금리는 또 낮추라고 하는게 말이 되나.
공직자가 지켜야 할 제1원칙은 본인이 하고 싶지 않은 걸 시민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시민들의 인센티브를 고쳐 먹으려는 건 공복의 자세가 아니다. 사람들의 인센티브가 그렇다면 이를 충족할 수 있게 최대한 복무하는 게 공직자의 도리이지, 윤리적으로 계도하려 하는 건 오만한 태도다.
만약 시민들이 원하는 A가 아니라 B가 맞다고 생각하면, A를 못하게 할 게 아니라 B가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당연히 공직자 스스로도 입으론 B가 맞다면서 A를 하는 내로남불도 피할 수 있고. 인센티브 구조는 그대로 두고 흰소리나 하고 있으니 언행불일치의 늪에서 나올 수가 없는 것.
동네 치킨집도 '너무 맵다'는 리뷰에 '치킨은 원래 맵게 먹는게 맞습니다'라고 하면 망하는데, 정치인들은 기어코 매운 걸 먹이고 '국민의 입맛 수준을 높였다'고 자부한다. 정말 짜증나는 풍경이다.
인센티브라는 가장 중요한 메스를 쓸 줄 모르니 뭐든 구조개혁이란 건 엄두를 못낸다. 예를 들어 요즘 숙련된 개발자 공급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건 장삼이사도 안다. 그런데 대학의 컴공과 정원은 거의 차이가 없다. 왜 대학은 취업률과 입결을 동시에 높일 컴공과를 만들지 않는걸까. 멍청해서? 그럴리가. 간단하게 '절대' 현직 교수를 내보낼 순 없으니 새로운 과를 만들어도 기존 교직원을 그대로 써야해서다.
그럼 선택지는 두 가지다. 정년 보장된 교수를 내보내는 골치 아픈 일은 할 수 없으니 이 상태로 다 함께 죽는 것. 또 하나는 '개발자가 필요하다'+'인기 학과로 전환하고 싶다'는 수요가 현실화 할 수 있게 강하게 지원하는 것. 빈사 상태인 대학 재정으로는 감당 못 할 전환비용을 정부가 과감히 지원하고, 모두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인센티브를 자꾸 무시하는 건 인센티브와 특혜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