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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구연한이야

날짜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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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건강
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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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처럼 주변에 선물한 책이 있다. 판촉사원마냥 권하고 있다.
길고양이의 수명은 대략 3년 내외다. 대체로 7살 정도면 '노묘'로 본다. 길고양이는 나이들 걱정은 안해도 되는 셈이다. 반면 집고양이는 수명이 15살 정도다. 갑자기 너무 좋은 환경으로 옮겨와 묘생 절반 이상을 늙은채 살 운명이다. 그렇기에 집사는 어릴 때부터 좋은 사료를 먹이고 치아, 연골 관리를 한다.
우리 삶도 집고양이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린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보다도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인류는 얼마 전까지 50살 전후까지 기력을 유지하며 살다 10년쯤 병치레를 하다 죽었다. 젊을 때 과로도 하고 술, 담배도 즐기면서 내달려 50살 무렵에 성취를 이루면 끝인 게임이다. 그런데 이제는 달려온 만큼 더 가야한다.
이 미스매치는 사회적으로도 문제다. 수명과 내구연한이 엇비슷할 줄 알고 만든 연금이 무너질 것이고, 내구연한이 다한 기성세대는 온갖 만성질환에 시달릴 게 확실해 건보도 문제다. 100년을 살 청년 세대는 50년의 시간 지평으로 살아온 윗세대와 사사건건 맞는 게 없다.
이 책은 우리의 '내구연한'에 대한 책이다. 여생을 불행하게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반드시 내구연한을 늘려야 한다. 책에선 이를 줄이는 행동을 '가속노화'라고 부른다. 가속노화를 부추기는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방안까지 잘 제시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우리가 여전히 '양복입은 침팬지'라는 점이다. 문명을 이뤘지만, 수백만년 동안 진화한 뇌는 아프리카 초원 살던 때랑 다를 게 없다. 그래서 굶어죽지 않기 위해 단 것에 환장하며 열량 낭비를 막기 위한 게으름과 새로운 자극에 빠지는 모험가 기질이 그대로다. 이게 풍요의 시대에 문제를 일으킨다.
인간의 뇌는 맛있는 것과 새로운 것을 보면 도파민으로 보상한다. 그런데 이 단순한 침팬지의 뇌를 이제 명문대 심리학 박사들이 만든 SNS 알고리즘과 식품공학자가 만든 가공식품이 공략한다. 이런 거대 기업의 입장에서 인간의 뇌를 해킹하는 건 어렵지 않다. 쓰레기 같은 유튜브 채널이 수십만 구독자를 금방 모으는 걸 보면 안다.
10초짜리 코카인 댄스로 시작한 유튜브 쇼츠는 새벽 4시까지도 잠을 못들게 하고, 액상과당이 투하된 음료는 만성 질환을 부른다. 직원을 위한다며 사장님이 사준 허먼밀러 의자 '덕분에' 하루 10시간을 스트레칭 한 번 없이 보낸다. 당연히 운동 능력은 떨어지고 노화 급행 열차를 탄다.
책에 더 깊이 빠져든 건 가속노화의 결과물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내 나이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많이 봤지만, 너무 지쳐있고 몸은 아프면서 주변 사람에겐 짜증인 사람이 많았다. 반면 민간에서 만난 자기관리에 성공한 이들은 40대에도 30대 초반 같은 사람도 흔하다. 이미 내구연한 양극화는 현실이다.
수천조원 규모의 빅테크부터 식품, 미디어까지 우리 뇌의 뒷문을 열려고 하는 시대에는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 책에서 강조하는 건 이동성(운동), 마음 건강(정신), 건강과 질병(대체로 식사), 나에게 중요한 것(인생관)이다.
챕터의 구성을 보면 허무할 정도로 교과서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정답에 가깝다. '정도'를 제시하고, 노년내과 전문의의자 의과학자로서 철저하게 검증하고, 의사로서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글로 설득한다.
5년전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항상 연금은 공제한도 만큼 붓고 있다. 또 무자르 듯 인덱스펀드와 채권 약간 만을 유지해오고 있다. 인생은 50살이 넘어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될 것이고, 정석은 단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제적 자산을 넘어 우리가 타고 태어난 이 몸의 자산관리 비법을 말한다. 대다수 사람은 대략 30년 정도 '연봉'이라는 쿠폰이 나오는 채권이다. 이를 금융자산으로 환산하면, 우리 대부분은 결국 거의 전재산은 한 몸 뿐이다.
이 자산을 이젠 100년을 굴려야 한다면, 일찍부터 정석대로 운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운동하고 좋은 음식 먹고, 명상하고. 책에는 없는 내용인데, 스마트폰에서 SNS와 유튜브 앱을 지우고 흑백 필터를 쓰는 것도 좋다. 여하튼 기기묘묘한 유튜브 비법들보다 쉽다.
누구든지 자신을 포함해 아끼는 대상이 있다면 꼭 권할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