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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뉴딜: 더 더럽고 위태롭고 '붉은' 세계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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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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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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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산업 전선에서 뛴 소년공들. [출처 Library of Congress]
<설국열차>에는 기차의 밑창을 여니 한 아이가 숯검댕을 뒤집어쓰고 엔진을 돌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인류 최후의 기술이 모인 초현대적 기차 밑바닥에 올리버 트위스트가 있었던 셈이죠. 숭배의 대상인 '엔진'의 이면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현실에서도 '인류를 구하자' 구호를 외치며 녹색 열차가 출발했습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그린 뉴딜'이 전세계의 화두입니다. 더럽게 땅에서 석유나 석탄을 캐는 걸 멈추고, 무한한 바람과 햇볕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꿈꿉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전기차로 환경오염을 없애고, IT로 탈물질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류가 이 고비를 넘으면 지속가능하고 오염이 없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거라는 책이 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석유 시대에서 '희귀 금속 시대'로

<프로메테우스의 금속>은 녹색 열차의 밑창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희귀 금속(Rare metal)입니다. 아마 희토류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2011년에 중국인 선장 나포 문제로 중국과 일본이 다툴 때,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자 일본이 손을 들었습니다. GDP 역전과 함께 일본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흙 때문에 전자왕국이 멈출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희귀 금속은 ~륨, ~슘 으로 끝나는 보통 사람은 평생 몇 번 들어보지도 못할 광물을 말합니다. 네오디뮴, 인듐, 갈륨, 토륨 등등. 여기에 그나마 유명한 희토류도 포함해 대략 30여가지를 전략자원으로 봅니다. 말그대로 희귀해서 전세계 생산량이 약 20만 톤, 아주 큰 배 한 척에 실을 양이죠.
우리는 석유 시대의 다음 장은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될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실상은 희귀 금속이라는 다른 광물 시대로 넘어갈 뿐이라고 말합니다. 인류는 앞으로도 땅을 파야 하고, 어쩌면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지정한 희귀금속 목록.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한 줌도 안되는 광석이 우리가 올인한 이른바 그린 뉴딜의 핵심입니다. 태양광 발전에는 인듐과 갈륨, 풍력 터빈에는 네오디늄이 필요하고 전기차에는 코발트, 리튬, 니켈 등 20여가지 희귀 금속이 들어갑니다. 얼마전에 테슬라 창업자 엘론 머스크는 뜬금없이 리튬과 니켈 생산량을 늘려달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광물이 없으면 테슬라 공장도 멈춰야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테슬라 차주와 킨샤샤의 아동노동자

중국 최대 희귀금속 생산지 바오터우의 한 정제 공장. [출처 BBC]
그렇게 중요하고 친환경 정책에 필요하면 더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문제는 이 희귀 금속 채굴이 엄청난 환경 오염을 부른다는 겁니다. 갈륨 1kg을 얻으려면 바위 50톤을 깨서 독성 화학물질과 물을 여러번 섞어 정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제에 쓴 물은 그대로 어딘가로 흘려 보냅니다. 중국에선 산지 주변 주민의 암 발병률이 몇 배로 뛰고, 기형아가 태어나는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생산량의 대부분을 중국이 차지하지만, 1980년대까진 미국이 이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이게 넘어간 건 '너무 더러워서'입니다. 개발도상국의 오지로 넘길 만큼 더러운 산업입니다. 여기에 환경주의 진영에서 기겁하는 방사능까지 배출합니다. 바오터우의 취수장 방사능 수치는 체르노빌의 2배입니다. 희귀 금속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정제 과정에서 배출량이 상당합니다.
유럽과 미국의 신재생 발전 드라이브의 이면에는 중국이나 아프리카의 희귀 금속 채굴이 있습니다. 서울에 전기차가 늘어나면 서울의 대기오염은 줄지만, 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충청남도의 대기는 더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테슬라 차주가 늘어나면 킨샤샤의 코발트 광산에는 더 많은 아이가 투입됩니다.

송곳 위에 올라탄 첨단 기술 경제

희귀 금속. [출처 위키피디아]
경제적 문제도 남아있습니다. 전세계 희토류 시장 규모는 7조원 정도입니다. 이 시장의 95%를 중국이 지배합니다. 여기에 반도체와 앞으로 수십배 성장할 신재생 에너지, 전기차 산업 등이 올라타 있습니다. 반도체만 해도 시장 규모가 600조원이 넘죠. 한 줌 위에 세계 경제가 올라탄 셈입니다.
1970년대까지 석유 공급에 출렁이던 세계 경제는 산유국이 늘고, 결정적으로 미국의 셰일 혁명을 겪으며 안정을 찾았습니다. 사우디에 미사일이 떨어지면 하루이틀은 놀라도 경제가 휘청이진 않죠. 이제는 아이폰이나 테슬라에 20~30가지씩 들어가는 희귀 금속 중 몇가지만 병목이 걸려도 생산 체계가 위태롭습니다.

중국이 손에 쥔 '그린 뉴딜'

희귀 금속 시장의 지배자는 중국입니다. 1980년대에 서구는 이 시장을 중국에 완전히 넘겨줬습니다. 중국이 그저 돈이나 벌려고 한 선택은 아닙니다. 1992년에 덩샤오핑은 "중동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전략자원으로 접근한 겁니다.
중국공산당 하면 궁중암투만 떠올리지만, 사실 덩샤오핑 이래로 모든 중국 국가 지도자는 공학 전공자입니다. 장쩌민은 전기공학, 후진타오는 수리공학, 시진핑은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총리도 경제학을 전공한 리커창을 빼면 리펑(기계학), 주룽지(전기공학), 원자바오(지질학)도 마찬가지. 즉 중국은 테크노라트가 지배합니다.
희귀 금속의 잠재력을 알아본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쿼터를 줄이며 서구를 압박하고, 내부적으로는 희귀 금속 생산에서 첨단 산업으로 밸류 체인을 발전시켰습니다. 지금 중국은 태양광 설비 세계 1위, 수력과 풍력 발전 투자 세계 1위, 전기차 세계 1위에 신재생 발전량 세계 1위입니다. 여기에 2차 전지도 80% 이상 만듭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출처 포린어페어스]
파리기후협정에 중국이 서명했을 때 '왜?'라는 질문이 뒤따랐습니다. 굴뚝 산업으로 올라선 중국이 왜 기후 대응에 동참 했을까요. 이 책에서 저자는 서구 사회가 '중국이라는 용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 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수치로 보면 과장은 아닙니다.
서구도 이제 광업을 재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과연 쉬울까요. 프랑스인인 저자는 프랑스의 상황을 전합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몇몇 국내 광산을 열려고 했지만,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친환경 정책을 하기 위해서 오염 산업을 재개해야 하는 게 서구의 딜레마입니다. 주민 반발도 클겁니다.
우리 동네의 오염을 줄이기 위한 대책은 중국이나 아프리카에 계속 희귀 금속을 의존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우리 집의 깨끗한 공기와 탈탄소를 위해 전략 자원과 산업은 중국에 의지해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차세대 사우디아라비아는 어디인가

2020년 국가별 희귀 금속 생산량 [출처 스태티스타]이 책을 보면서 왜 호주가 이렇게 미국의 러브콜을 받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서구에서 그나마 유의미한 희귀 금속량을 유지하는 건 미국을 빼면 호주 뿐입니다. 유럽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은 호주를 새 시대의 사우디로 점 찍은 것 같죠.
왜 억만장자들이 우주로 간다고 요란을 떠는지 의문이었는데 이것도 좀 해소됐습니다. 희귀 금속은 지구에서는 희귀하지만, 우주에는 넘쳐납니다. 소행성 하나만 붙잡아도 지구 매장량의 수백배가 묻혀있죠. 전기차를 만드는 머스크나 데이터센터의 왕 베조스는 꼭 가져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 대표 진보지인 '르몽드디플로마티크'의 기자입니다. 기후 변화 부정론자와는 한참 거리가 멉니다. 저는 우리가 기후 위기를 맞은 원인이 '환경 오염'이라는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고 마구 자원을 낭비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추진하는 그린 뉴딜도 그 비용을 제대로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전략적 위기와 경제적 의존, 환경오염 문제를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