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법가가 아닌 유가가 이겼을까. 고대 중국사를 읽으면서 항상 들었던 의문이다. 어느모로보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법가는 왜 통일 제국 시대를 열고도 한 세대 만에 유교에 역사의 무대를 내줬는가 하는 호기심이다. 이론적으로 더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법가가 두루뭉술하고 ‘좋은 게 좋은 것’ 같아 보이는 유가에 자리를 내줬으니 말이다.
조금씨 사회 생활을 경험하며 찾은 이유는 시스템의 유지 관리 비용 문제다. 법가는 골목마다 경비병을 세우고 잦은 형집행을 동원한다. 규칙과 집행 체계를 만드는데 품이 많이 든다. 요즘으로 치면 골목마다 CCTV를 세우는 꼴인데, 옛날에는 이게 훨씬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이렇게 해도 결국은 CCTV 없는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반면 유교는 모두의 마음 속에 CCTV를 달았다. 끊임없는 교육과 가치 전파, 장엄한 의식 등을 통해서다. 교육을 통한 전파는 덕(德)이고 마음을 감화하는 의식은 예(禮)다. 유교는 모두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수양을 하라고 한다. 이런 체계를 세우는 순간 자신의 인생의 불행은 스스로의 책임이 된다. ‘자유가 있건만, 내가 부족해 이렇다’ 자책 하게 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을 법령으로 인도하고 형벌(刑罰)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다. 백성을 덕(德)으로 인도하고 예(禮)로 규제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자연히 선(善)에 이를 것이다” (논어 위정편). 이 짧은 문장에 고대 시대의 과도한 법 집행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인류 문명화에 대한 가설 중 하나가 '자기 가축화'다. 가축이라하면 나쁜 의미 같지만 마치 야생말이 사회성을 발달시킨 끝에 인류의 곁에 머무는 유순한 종이 된 과정을 우리도 거쳐왔다는 의미다. 사회 생활을 하며 '눈치'를 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야생에서 문명의 길로 걸어 들어왔다.
유교의 통치는 모두가 자신의 마음속에 달아놓은 CCTV의 통제를 스스로 받는 저비용 통치 구조다. 불행은 개인 탓이요, 모두가 성공은 할 수 있다. 다만 처지가 딱한 건 수양이 부족해서다. 이 얼마나 성군의 치세인가. 작은 법 위반에도 팔다리를 자르고 사사건건 개입하는 ‘나쁜 나랏님’이 다스리는 법가의 통치보다 비용이 낮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결국 이기지 않았을까.
이런 피통치자의 마음속의 CCTV를 다는 일을 아주 넓게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적어도 수천년의 동아시아 역사에서 위력을 검증한 통치 수단이다. 충과 효를 실천한 미담을 발굴하고 이런 원리를 담은 철학을 바탕으로 관리를 선발해 많은 이들이 자나깨나 읊고 외우게 만들었다. 피통치자가 자발적으로 유순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신민이 되는 시스템의 기반을 소프트웨어에서 찾은 것이다.
‘조선은 왜 망했는가’는 일제 강점의 역사가 있는 한국에서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문제가 많은 나라가 500여년이나 유지된 이유도 고민해봐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전근대 역사에서 한 왕조가 100년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다. 비록 500여년의 끄트머리는 처참하고 굴욕적인 결말로 귀결됐지만, 그 앞의 긴 역사를 이끈 원동력은 생각해볼 점이 있다.
굴욕의 역사를 겪은 한국 사람들은 철두철미한 하드웨어의 힘에 천착해 전진해왔다. 그 결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G8’을 논하는 데까지 왔다. 동시에 하나의 성적표를 더 받았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세계 꼴찌(42.3%)이고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건 1등이며 자녀가 기쁨보다는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시민도 세계 1등을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울하고 불행하고 자녀까지 부담스러운 자칭 ‘G8’이 한국의 성적표다.
전통적인 유교의 가치를 되살리자거나 논어의 가르침을 받들자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유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문제가 단순히 경제와 같은 ‘하드웨어’ 만으로 해결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5000만명이 모인 이 공동체가 한 국가,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엔진이 꺼졌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천년의 역사를 지배해온 ‘마음 속의 CCTV’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는 이 불행한 나라에 어떤 답을 찾아줄 수 있을까.
(통계: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15국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민 1만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766561?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