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굉장히 인상깊은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책 읽다가 그런 적이 있다. 스콧 갤러웨이 교수가 4대 빅테크와 겨룰 기업으로 테슬라를 짚은 부분을 읽었을 때다. 당시는 국내에서 테슬라를 억만장자 괴짜의 별난 취미나 부자의 장난감 정도로 인식할 때다.
이런 기업을 무려 빅테크의 반열에 오를 기업으로 꼽은 부분을 몇 번씩 다시 읽었다. 이렇게 현실적이고 똑똑한 꼰대가 어떻게 테슬라 같은 기업을? 스콧 갤러웨이를 아는 사람은 아는 게 이 양반은 잘 될 테크 기업도 삐딱하게 본다. 테크업계 언저리에 창궐한 조증에서 자유로운 꼰대다.
그의 주장이 들어맞는 데 겨우 3년 걸렸다. 물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시가총액을 두고 빅테크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는 건 헛소리고, 테슬라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2017년 이전에 이정도 무게감 있는 작가가 테슬라를 꼽은 건 돌이켜봐도 놀랍다.
사실 꼼수가 있다. 그는 빅테크의 대항마로 무려 11개의 기업을 꼽았다. 그래도 호기심에 그가 꼽은 기업(우버, 에어비앤비는 당시 비상장이라 제외)으로 구성한 '스콧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돌려보니 5년간 130%정도 오버퍼폼했다. IBM, 컴캐스트 같은 후진 기업도 고른 결과인데.
이런건 운이 따른 일이지만, 여하튼 빅테크에 대한 관점은 시중에 나오는 모든 텍스트 중에 가장 신뢰하고 읽는다. 뽕에 차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순환론에 기대서 저주하지도 않고. 비록 '사기꾼들이지만' 그들은 계속 이길 수 밖에 없는데, 그 해악이 매우 크다는 얘기도 자세하게 한다.
최근에 그가 낸 책은 전작의 코로나 버전 개정판이다. 펜데믹 이후 빅테크의 앞날은 어떻게 변할까, 리나 칸의 등장은 판세를 바꿔 놓을까. 결론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어차피 오게 될 빅테크의 지배력 강화가 더 빨라진다는 것. 팬데믹의 종료와 함께 팬데믹 때 드러난 장세가 끝나는 것도 환상이라고 말한다.
결국 엔데믹 시대에 시장을 어떻게 볼지는 관점의 길이 차이 같다. 단기적으로는 저평가 됐던 리오프닝 주식을 트레이딩으로 접근할 순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술 중심의 삶의 방식이 후퇴할 리 없다. 점점 원격화 하는 삶은 팬데믹 이전에도 이어온 흐름이다. 빨라지면 몰라도 후퇴할 가능성은 없다.
최근에 나오는 '금리 인상=빅테크 약세' 논리도 반론할 수 있다. 스콧 교수가 말하는 빅테크의 진짜 우위는 저렴한 자본 조달 능력이다. 미국은 세금을 더 걷으려면 의회에서 난장판이 벌어지고 대통령은 벌벌 떤다. 애플이나 구글은 구독료를 올려도 트위터에 욕이나 할 뿐. 이렇게 보면 애플 채권이 어지간한 나라 국채보다 못할게 뭔가 싶다.
금리가 올라 돈이 귀한 시대가 되면, 펠로톤이나 로블록스 같은 기업이야 자본 조달에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애플은? 오히려 빅테크가 아닌 기업 사이의 스프레드는 더 벌어지지 않을까. 돈이 귀한 시대가 됐을 때, 힘든 건 빅테크에 용감하게도 맞서려 하는 도전자일 것 같다.
이 포스팅을 올리고 있는데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지분 9% 인수를 발표했다. 재밌는 건 트위터가 이번 책에서 스콧 교수가 꼽은 '픽'이란 점. 우연의 일치지만, 이번에도 스콧 포트폴리오는 먹혀 들어가나싶다. 그가 꼽은 목록은 트위터·에어비앤비·카니발·레모네이드·넷플릭스·펠로톤·로빈후드·쇼피파이·스포티파이·테슬라다.
2017년에 테슬라를 놓쳐서(이기도 함)가 아니라 스콧 교수는 세상을 보는 관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다. 칼 포퍼는 세상에 대한 철학에 영향을 줬는데, 스콧 교수는 실제로 내 커리어 전반을 바꿨다. 저널리스트 기질에 극강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사람의 콘텐츠는 희귀하다.
사실상 세상을 만들고 있는 빅테크에 대한 무성한 소음에 피곤할 때 믿고 읽을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