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많은 문제는 ‘단기’와 ‘장기’ 사이의 부조화에서 생겨난다. 점심 때쯤 당일 떨어지면 서랍에서 초콜릿을 꺼내 먹으면 행복하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나면 내장지방 때문에 볼록해진 배와 임플란트 시술로 돌아온다. 몇시간이고 넋놓고 보게되는 숏폼 영상을 몇년째 보다보면, 책 한 장 읽기도 어려운 뇌가 된다. 주말에 쉬고픈 마음에 친구의 결혼식에 연달아 가지 않았다면, 몇년 뒤 자신의 결혼식을 앞두고 빈 하객 좌석을 떠올리며 전전긍긍하기 마련이다.
오랜 진화의 시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하루살이 같이 버텨왔다. 당장 먹을 게 없었던 그 땐, 바로 에너지로 쓸 수 있는 당분을 잘 찾아내야 생존에 유리했다. 우리는 단 맛을 찾아내면 쾌감을 느끼고, 남는 에너지를 지방으로 알차게 보관했던 이들의 후손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풍요가 찾아왔다.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버틴 몸으로, 갑자기 100년을 살게 되자 온갖 성인병에 시달리게 됐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문명의 기본적인 요소도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놓고 보면 여전히 ‘신문물’이다.
돈은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이를 다루는 인간의 뇌는 숲에서 숨어살던 시절과 다를바 없다. 조금만 투자가 성공하면, 숫자에서 눈을 떼고 숲속의 유인원 시절로 돌아가 사냥에 성공한 것처럼 흥분한다.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면서 무리한 베팅을 한다. 사냥꾼이었다면 필요한 베짱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처절한 버블 붕괴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야성적 충동>은 인간의 한계가 어떻게 경제 위기를 불러왔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출간됐다. 전세계 사람들이 대체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어리둥절해 하던 때다. 열심히 일해서 집을 마련해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았다. 무슨 일인가 신문을 펴보니 평생 가본적도 없는 미국 월가에서 만든 모기지 담보부 증권(MBS)이니 신용부도스왑(CDS)이니 하는데서 문제가 생겼다는 게 아닌가.
문제는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가 ‘양복입은 원숭이’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경제 문제를 일으킨 인간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 착각 그리고 이야기다.
인간은 마땅한 근거도 없이 베짱으로 베팅을 하고(자신감), 그럴싸한 환상에 끌려 무모한 선택을 한다(이야기). 모두가 규칙을 지키면 가장 좋은 결과를 얻는데도 눈 앞의 이익을 탐내며 나쁜 짓을 저지른다(부패와 악의). 물가 상승이 이뤄지는 데도 당장 명목 임금이 떨어지지만 않으면 소비력이 그대로라 생각하고 무리한 지출을 한다(화폐 착각). 그러면서 나에게 피해가 없더라도,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공정성).
초등학교 ‘바른생활’ 시간에 나올 법한 유치한 행동이 세계 경제를 무너뜨린 사건을 설명할 열쇠라는 얘기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야성적 충동’의 요소로 설명하면 이렇다. 2000년대 미국 사람들은 넘쳐나는 달러(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중국의 흘러넘치는 무역 흑자가 미국으로 돌아온 결과였다)와 저금리를 활용해 집을 사기 시작했고, 금세 자신감에 취한 과감한 베팅이 나타났다.
계속 오르는 집값은 ‘집값 불패’의 신화라는 이야기로 퍼져나간다. 다시 자신감을 자극한다. 월가가 끼어든다. 은행들이 집주인에게 집을 담보로 내준 대출을 여러개 묶어서 상품을 만든 후 사고판다. 모기지담보부증권이다. 여기서 사기꾼이 끼어든다. 집주일이 갚을 여력도 없는 대출을 여러개 묶어놓고는 최고 신용 등급의 상품이라며 판다. 과도한 자신감은 이야기를 낳아서 더 큰 베팅으로 이어지고, 큰 장이 열리자 부패와 악의가 끼어든다.
그러다 현실을 자각하면서 높은 탑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이 설명에 수학은 필요없다. 광기에 사로잡혔다가 우울증에 빠진 원숭이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다. 이렇게 <야성적 충동>은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합리적 존재’로 가정해왔던 호모 사피엔스가 얼마나 충동적인 존재인지, 그들이 일으켜온 사고를 하나씩 나열하며 설명한다.
2008년 금융위기에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2018년 이후 벌어진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은 순전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매우 비합리적인 일이다. 미국은 중국의 저렴한 물건을 쓰고, 중국은 많이 파는 게 최선의 결과다. 하지만 ‘공정성’의 렌즈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인들은 중국이 자신들에게 물건을 팔아 번 돈으로 국력을 키우는데 대해 불공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제조업 일자리를 내준 데 대해 분개했다. 중국산 저가품을 쓰는 효용이 더 큰데도 말이다.
거창한 국가 경제의 이야기로 생각해선 안된다. 개인도 야성적 충동에 이끌려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곤 한다. 여러 나라의 국민의 노후 준비를 상태를 연구한 결과를 찾아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모두가 필요한 돈보다 저축을 적게 한다. 책은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당장의 효용에 이끌려 돈을 쓰는 행태를 지적한다. 하긴 내일 출근하는데도 전날 폭음하며 골골 거리는 게 사람 아닌가.
우리는 여전히 이 낯선 시장이라는 이해하지 못한다. 태생적으로 그렇다면, 인간의 유용한 도구인 이성으로 대처해야 한다. 과도한 자신감이 일으키는 문제는 금융 규제로 예방하고, 사람을 홀리는 이야기는 정확한 정보 전달과 교육으로 차단해야 한다. 부패는 엄단하고, 더 공평한 체제를 만들어서 결과를 수긍할 만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투자의 대가들 가운데 ‘경제학을 배우라’고 하는 이는 많지 않다. 대신 사람의 심리, 즉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다. 충동적인 매매를 자제하고, 그럴싸한 이야기에 휩쓸리지 말라. 지나친 낙관을 거두고 자신의 소득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 미래를 위해 저축하라. 동시에 남과 ‘윈-윈’하는 관계를 구축하라.
충동으로 가득한 불완전한 존재지만, 그래도 우리가 때때로 바보짓을 저지른다는 점을 인정하고 담담히 읽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 아닐까. 야성적 충동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야성적 충동>을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