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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정말 누운 채 죽었을까

날짜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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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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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치솟는 문화 역량과 그에 어울리지 않기 답없는 인구 감소와 자산 시장 붕괴, ‘누칼협’이 상징하는 냉소까지. 지금이 전성기다, 라는 불안함을 느끼는 한국인이라면 떠올리는 모습이 있습니다. 먼저 간 일본의 버블 붕괴죠. 찝찜함에 자꾸 눈이 갑니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 일본의 이미지는 어느 정도 정립돼 있습니다.
'제조업 활황으로 불붙은 경기가 자산 버블을 부추겼고, 거품이 터진 후에도 자민당 1당 체제인 일본 정치의 무능으로 손도 쓰지 않고 있다가 쇠퇴했다'
는 겁니다. 투기 광풍에 이은 정치의 안일함이 낳은 결과란 거죠.
국내에 뿌리박힌 내각제의 부정적 이미지에는 '내각제=일본 정치=복지부동' 인식도 큰 몫을 했습니다. 자민당이 혼자 해먹고, 내각제를 하니 의원들이 노나먹는 정치를 한 끝에 '아무것도 않고' 망했다는 겁니다.
일본은 정말 손놓고 있었나
출처=인베스팅닷컴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일본은 손도 쓰지 않고 쇠락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기 일본 정치는 지금은 생각도 못할 만큼 다이내믹했습니다. 한국 정치 못지 않은 무협이 펼쳐진 게 이 때입니다.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정치가 바뀌면 나라의 운명도 바뀐다'는 굳은 믿음이 옳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일본의 몰락기는 아키히토 전 덴노의 헤이세이 시대와 겹칩니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로 정확히 30년입니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이란 수사와도 들어맞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헤이세이 시대라고 하면 곧 버블 붕괴 후 쇠퇴의 역사를 말합니다. 닛케이 고점도 이 즈음입니다. 인구도, 자산시장도 꺾이는 헤이세이 모먼트죠.
일본의 1989년은 한국의 1997년 같은 순간입니다. 이 해에 일본 정치는 뒤집어집니다. 요즘처럼 총리 얼굴이 바뀐 게 아니라 참의원 1당이 자민당에서 사회당(공명당+민사당 연립)으로 넘어갑니다. 이 이변을 이끈 게 도이 다카코라는 여성 정치인입니다. 여성 인권 신장에 앞장서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젊은 여성 정치인이 무려 55년 체제를 뒤엎는 이변이 일어난 겁니다.
국내에선 '55년 체제'(1955년 이후 자민당 연립이 정권을 독점한 체제)라는 용어 탓에 일본 정치의 격변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1989년의 일대 사건은 이런 인식과 다르죠. 여성, 그것도 사회주의 성향인 스타 정치인의 약진은 '도이 붐'을 일으켰습니다.
다만 다음해 중의원(하원) 선거에선 결국 사회당이 자민당을 누르는데 실패하고, 도이는 총리에 오르지 못합니다. 미완의 혁명이었죠.
돌풍, 정권과 선거제를 뒤엎다
일본신당 열풍 끝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호소카와 당시 총리 출처=위키피디아
변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완의 정권 교체는 1992년 등장한 일본신당이 완수합니다. 관료주의 타파, 정치 투명화, 규제 철폐, 지방 분권과 선거제 개혁을 외치며 등장한 신당입니다. 출범 때부터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깨끗한 정치 신인이나 여성을 내세워 열풍을 일으킵니다. 이런 돌풍은 출범 1년 만에 선거에서의 대승과 집권으로 이어집니다.
38년 만에 55년 체제가 저문 겁니다.
대체로 이렇게 열풍으로 집권하면 거품으로 무너지곤 하죠. 일본신당도 머잖아 사분오열 끝에 붕괴됩니다. 하지만 정치에서 개헌 만큼 어렵다는 일을 해내고 사라집니다. 바로
선거제도 개혁
입니다. 우리의 (맛보기) 연동형 비례제나 선거구 조정 정도가 아닙니다.
중대선거구제를 소선거구+비례대표제로 뜯어 고치는 대공사를 해냅니다.
이 때까지 일본은 1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이 당선되는 선거제를 운영했습니다. 그 결과 지역 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정치인은 대대로 편하게 재선하고 했죠. 1등이 아니어도 뱃지를 달 수 있는 조건이니까요. 계파마다 나눠먹기 공천을 통해 의원 자리를 나눠먹는 폐해도 심했습니다.
일본신당은 이런 '철밥통'을 깨는 개혁에 성공한 겁니다. 그 결과로 내부 분열을 견디지 못해 정권이 무너졌지만요. 적어도 이때의 일본 정치는 선거제까지 바꿀만큼 동력이 있고, 그만큼 위기라는 절박함도 있는 힘이 넘치는 상태였습니다.
극장을 방불케한 일본 정치의 '다이내믹'
소선거구제는 조금만 더 표를 받아도 '싹쓸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국내 사례를 보면요,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은 서울에서 53%를 득표합니다. 그런데 의석은 83%(49석 중 41석)을 휩쓸죠. 이런 소선거구제의 특징은 이후 일본 정치에 다이내믹함을 더합니다. 그 정점에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 정권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아는 일본 총리가 있냐고 묻는다면 고이즈미는 아베와 함께 1, 2위를 다투지 않을까요?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는 기분 나쁜 이유지만요.
고이즈미 시기의 일본 정치를
'극장 정치'
라고 부릅니다. 이때를 보면 '내각제=무기력'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사실과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입법과 행정을 한 손에 쥔 고이즈미 총리는 매일 뉴스거리를 만들면서 국정 드라이브를 겁니다. 우정민영화를 밀어붙이다 부결되자 의회를 해산하고, 반대파를 숙청하며, 선거에선 반대파를 특정해 '자객'을 보내 떨어트리기도 합니다.
"우치야마 유 도쿄대 교수는 고이즈미 정권의 정치수법에는 두 가지 일관된 특징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인상적인 한 마디의 활용”과 “선악의 대립구도를 강조하는 정치의 극장화”를 통해 유권자의 감정적 지지를 확보해가는 것이다. ‘적’이 누구인지를 ‘한마디’로 지목하고 자신을 그 강력한 적에 대항하는 도전자로 연출한다"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중)
일본 정치의 특징은 이익단체를 대표하는 의원이 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카르텔이 공고하다는 점입니다. 나쁘게 보면 카르텔이지만, 선해하면 '조합주의'의 면모입니다. 고이즈미는 이 이해관계를 들쑤시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인기를 바탕으로 기존 체제를 흔들고, 기사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뛰어난 겁니다. 중립적인 의미의 포퓰리즘에 능했습니다.'일본 정치' '내각제' 하면 떠오르는 무사안일은 최근에 고착된 모습입니다. 쇠퇴를 넘어 황혼기에 접어든 요즘의 일본에 어울리는 거죠. 일본은 사투를 벌여왔습니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평가절하할 수 있지만, 나름 시스템 안에서 일본 정치는 뭐라도 해보려고 별 짓을 다하고 정권도 바꾸고 선거제도도 바꿔봤습니다.정해진 미래와 불가항력, 그 틈을 파고드는 유혹이 시기를 들여다보면 인구 감소라는 메가 트렌드에 따른 국가의 쇠락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정치 무용론을 얘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정치가 모든 걸 바꿀 수 있다, 일본의 쇠락은 모두 정치 무능 탓이다, 하는 데에 반론을 제기하는 겁니다. 정치만능론은 정치의 과격화, 과잉정치화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한 편으론 인구 문제 같은 예정된 미래를 대처하는 건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노화를 되돌릴 수 없듯이요. 그럼에도 모든 걸 뒤짚어서 해내겠다고 약속하는 정치인과 이에 동조하고픈 열망은 나이듦을 부정하고 성형외과로 향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이와나미 신서 중 한 권입니다. 일본인 학자가 자신들의 몰락을 되돌아본 회고록입니다. 지하철에서 들고 읽기 수월할 만큼 작은 책이지만, 대강으로만 알고 있던 일본의 잃어버린 시간을 잘 정리한 책입니다. 저출산-고령화라는 정해진 미래로 달려가는 우리 입장에서 한 번 시간 내 읽어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