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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귀여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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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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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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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는 해로운 새다”. 1955년 농촌 현장지도 와중에 곡식을 쪼아먹는 참새를 본 마오쩌둥 주석의 한 마디는 중국 참새들에겐 재앙이었다.
주석의 뜻을 받들어 수억 명의 인민이 곡식을 축낸다며 참새 잡기에 나섰다. 하루에 수만 마리의 참새를 잡는 기염을 토한 도시는 ‘모범 사례’로 홍보됐고, 지역마다 실적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참새 잡기는 대성공이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이 들끓었고, 농사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수천 만명의 아사자를 낳은 대약진운동의 한 모습이다.
참새 잡기 운동은 독재자의 무지와 고집이 만들어낸 사례로 유명하다. 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모습이 있다. 참새를 많이 잡는 게 정책 목표가 되자, 참새가 많지 않던 곳에서도 포획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없는 참새가 어떻게 잡힌걸까. 일부러 참새를 키우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적을 늘려야 하니 없던 참새를 키우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렇게 정책이 오히려 목표의 반대되는 결과를 만든 사례는 많다.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은 인도에서 맹독을 가진 코브라 퇴치 운동을 벌였다. 코브라를 잡아오면 현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한동안 줄어들던 코브라는 얼마지나지 않아 오히려 폭증했다. 참새와 마찬가지로 현상금을 받기 위해 코브라를 사육하는 이들이 나타난 결과다. 경제학자 호르스트 지베르트는 정책이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만드는 현상을 이 사례를 빌려 ‘코브라 효과’라고 불렀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끌린다. 이 단순한 명제에 따라 선한 목적을 갖고 많은 정책이 탄생한다. 목표하는 결과를 내면 지원금을 주고, 반대의 결과를 내면 벌금 같은 제재를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렇게 간단하게 통제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섬세하고 때로는 기묘하기까지 한 인간에 대한 이해에 무관심했던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대놓고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통 말을 듣지 않을테니 옆구리를 슬쩍 찔러라,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넛지>의 메시지다. 순순히 시키는대로 하기 싫어한다면 ‘자신이 선택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기술을 써야 한다.
마치 사람들의 심리를 조작하라는 듯한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들지 모른다. 실제 사례를 보면 뜻밖의 인간의 ‘귀여운’ 면모에 웃음이 난다.
차일피일 논문 마감을 미루는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저자는 마감을 앞둔 사람 A에게 100달러 수표를 받고, A가 매월 마지막 날에 일정 분량을 다 쓰지 못하면 이 수표를 현금화해서 써버리기로 했다. 겨우 100달러지만, 내 돈으로 다른 사람이 흥청망청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A는 계획대로 4달 만에 논문을 마감했다고 한다.
다 쓰면 100달러를 준다는 인센티브였으면 기대할 수 없었을 효과다. 이런 결과를 만든 디테일은 ‘내 돈을 남이 가져가서 쓴다’는 불편한 상황을 만든 점이다. 특히 저자는 이 돈으로 A를 뺀 파티를 하겠다고 밝혔다. A가 배아파서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겨우 100달러로 논문 마감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넛지>의 메시지는 사소해 보인다. 화장실 변기에 파리 모양 그림을 그려 넣는다거나 쓰레기장에 가짜 눈을 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니까. 하지만 책의 핵심은 눈 모양 스티커가 아니다. 인간은 섬세하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건 ‘선한 의도’로 가득찬 정부가 특히 새겨야할 가르침이다.
좋은 목적으로 밀어부친다고 꼭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아이를 낳을 때마다 매달 10만원씩 준다고 하던 정부가 이 돈을 20만원으로 늘리면 어떨까. 지원금을 2배나 늘렸으니 아이를 더 낳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이렇게 매년 늘어나는 보조금을 보며 어떤 이들은 ‘기다리면 더 많이 지원해준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출산을 미루도록 장려하는 신호를 주는 셈이다.
인간은 여전히 블랙박스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국가 체계가 강화하면서 인간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착각이었다. 우리는 더 깊이 이 미묘한 존재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보다 섬세한 배려가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