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라는 ‘호구’
사람은 쉽게 속는다. 단체채팅방에 누군가 ‘찌라시’를 올리면 많은 사람이 사실로 믿는다. 사이가 가까운 사람의 말이라면 더 쉽게 믿는다. 남의 말을 쉽게 믿는 건 위험한데도 그렇다. 뉴스에는 사람에게 속아 평생 번 돈을 잃은 사기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끝없이 나온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쉽게 남을 믿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우리는 금세 또 다른 사람을 믿고 상처를 받곤 한다.
수백만 년 동안 서로 속고 속여온 인류는 왜 여전히 남의 말을 잘 믿을까. 긴 진화의 과정을 생각하면, 쉽게 남에게 속고 손해를 보는 개체는 도태되고, 남을 잘 속이거나 의심이 투철한 이들만 살아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인류는 여전히 고등교육을 받으면서까지도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를 학습해야만 할 수 있는 순진한 존재로 남아있다.
<사피엔스>는 이 순진하기 그지없는 딱한 종이 살아남는 걸 넘어 번성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인류의 성공 비결을 ‘거짓말을 잘 믿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7만년 전, 인류는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거짓말쟁이 주위에 모여든 이들은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홀려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이를 ‘인지 혁명’이라고 부른다.
거짓말은 이런 식이었다. ‘우리 부족의 선조는 호랑이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누군가 주장한다. 선사 시대일지라도 호랑이와 사람이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연히’ 호모 사피엔스는 그런 거짓말을 떠올리고, 믿는 종으로 변화했다. 그 결과 겨우 혈연으로 엮인 수십명이서 모여지내던 한계를 깨고, 수백 혹은 수천명 규모의 ‘호랑이 부족’이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우리는 호랑이의 후손’이라는 거짓말이 공동체를 묶은 문화로 거듭난 결과다.
인지 혁명은 집단 규모의 한계를 무너뜨렸다. 호랑이 부족은 ‘호랑이 신화’로 발전해서 ‘호랑이 나라’의 토대가 됐다. 이런 상상력은 사후 세계 같은 초월적인 영역까지 뻗어 나갔다. 기원전 900년 무렵부터는 전세계에서 보편 종교의 씨앗이 뿌려졌다. 중동에서는 기독교, 인도에서는 불교, 중국에서는 유교가 출현했다. 마침내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 혁명은 가족, 부족 그리고 국가를 넘어 모든 개체로 뻗어나간 것이다.
정치 체제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 한 순진한 호모 사피엔스는 친구에게 이런 제안을 받는다. ‘배가 고파서 그런데 고기 한 덩어리만 빌려줘. 대신 나중에 갚는다는 표시로 조개 껍데기를 하나 줄 게’. 귀한 고기를 먹지도 못할 조개 껍데기와 바꾸는 건 바보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 거래는 성사된다. 조개가 언젠가 돌아올 고기의 값어치를 가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있지도 않은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며 신용(credit)을 창조해냈다.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에 비치는 숫자의 나열을 보면서 울고 웃는다. 눈 앞의 멋진 외제차를 사는 대신 평생 가보기도 쉽지 않을 브라질에서 발행한 채권을 사기도 한다. 주식, 채권이라는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것도 모자라 이걸 다시 활용한 파생상품이라는 가공의 존재도 만들어서 사고 판다.
인류의 문명은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믿어왔기 때문에 쌓아올릴 수 있었다. 겨우 수십 마리가 모여 사냥을 하는 늑대와 달리 인간은 수백 만명이 작전을 짜서 전쟁을 벌이기도 하고, 지구 반대편의 기업과 협력해 물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순진한 종은 실체가 없는 이야기를 믿으며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끝에 지구의 정복자로 올라섰다.
수만 년 전 상상력 넘치는 누군가가 ‘호랑이 조상설’을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나무에서 열매를 따러 다녔다. 반면 순진한 이들은 ‘호랑이 부족’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뭉쳐 다니며 큰 동물도 쓰러뜨리고, 힘을 합쳐 다른 부족을 내쫓기도 했을 것이다. <사피엔스>에 따르면 우리는 이런 순진한 ‘호구’의 자손인 셈이다.
사상과 종교, 민족, 이념 등 수많은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문화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2020년 태국 방콕에선 별안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졌다. 콘서트장이 아닌 반정부 시위대 사이에서. 그들은 새로운 세계라는 꿈을 담은 외국 노래를 함께 부르며 전의를 불태웠다. 중국공산당은 ‘불건전한’ 내용의 한국 음악을 금지하고, 팬클럽을 해산시키곤 한다. 여럿이 같은 상상을 하는 게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알기 때문이다.
인지 혁명의 결과 물질의 풍요를 이룬 우리는 역설적으로 ‘상상력의 힘’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미국 중년 백인의 평균 수명은 줄어들고 있다. 세계 패권국이자 부자 나라인 미국에서 알코올과 마약 중독, 총기 범죄와 자살로 생긴 일이다.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은 미국인들이 ‘절망사’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십년을 고생한 끝에 선진국에 올라선 한국은 뉴델리의 시민들보다도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각주 참고)
우리는 항상 꿈을 꾸면서 성장해왔다. 아이만 꿈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인류는 별을 바라보듯, 환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이들과 협력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왔다. 이 동력이 지금 고갈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공허함을 채울 새로운 ‘거짓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분명한 건 이 연료통은 10초짜리 쇼츠 만으로는 채울 수 없다는 점이다.
(각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15국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민 1만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