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씨한테 수천억 원을 투자받은 한 IT 업체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주변에 농담으로 ‘설곽(서울과학고)상’이라고 하는, 샤이한 얼굴에 CPU는 풀가동인 게 느껴지는 그런 분이었다. 여느 천재들처럼 이분은 대학생 때 재미삼아 프로그램 투자를 시작했고, 수십 퍼센트의 수익률을 올렸다. 또 여느 이야기처럼 주변 천재들끼리 모여 투자 ‘동아리’를 만들어서 투자를 이어왔다.
그런데, 어느날 알파가 사라졌다. 얼마 전까지 떼돈을 벌어주던 윤전기가 말썽을 부리더니 뻗어버린거다. 경제지 속보를 초보적인 자연어 처리해 매매하는 원시적인 기술은 금세 남들이 따라했고, 기술도 사람도 무엇보다 돈이 많은 기관이 알파를 다 가져갔다고 한다. 이렇게 한 개미가 평생 알파를 쫓는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렇게 20여년을 자연어 처리에서 시작해 알고리즘 매매로, 결혼식장에서 만난 스탠포드 친구한테 들은 분자생물학을 응용하다 AI 딥러닝과 뇌과학까지 쫓아다녔다. 그렇게 알파의 꽁무니를 잡은 것 같을 때 경쟁자가 붙고… 붉은 여왕의 법칙의 교과서적 사례다.
애초에 인터뷰를 갈 때부터 ‘어떻게 지속적으로 시장을 이기겠어?’하는 마음으로 갔고, 그 질문으로 바로 들어갔다. 굉장히 솔직했는데, 그런 고민 끝에 그는 이미 투자 사업을 하지 않는다. 알파를 쫓느라 개발한 AI를 기업에 빌려주는 SaaS 비즈니스로 피봇했다. 알파와의 추격전보단 쫓을 수 있을거라고 믿는 이들에게 곡괭이를 빌려주는 사업을 선택한 셈.
청나라 채권 실물을 수집하는 그는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지속적으로 알파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말은 안했지만) 인정한 거니까. 결국 시장에서 언제까지난 알파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투자의 신(=워런 버핏)이 아닌 99.9%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에베레스트 산이 높아봐야 지각의 두께를 생각하면 뾰루지나 마찬가지이듯, 천재가 아니라도 남들도 ‘꽤’ 똑똑하기 때문이다.
<천재들의 실패>는 당대 최고 지능과 무제한의 자금이 만났을 때, 그 알파의 유통기한이 얼마인지 알려주는 실험 보고서다. 노벨상 수상자 2명에 최고의 트레이더 열댓명, 월가의 돈 36억 달러를 부어서 나온 결과는 고작 ‘3년’이다. 모델이 잘 작동하니 베팅을 늘리고, 점차 알파가 사라지니 초조해져서 물타기 하다가 뻗어버리는 듣보잡 개미나 할 짓을 그런 천재들도 똑같이 반복했다.
원래 남 잘된 이야기보단 망한 이야기가 재밌기도 하거니와 이 책은 읽고나면 세 가지 교훈도 준다. 천재는 있지만, 나머지도 꽤나 똑똑하다는 점. 특히 돈 문제에 관해선 얄짤없다. 또 아무리 모델이 어떻고, 컴퓨터니 알고리즘이니 해도 인간이 하는 일은 결국 인간적 요소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노벨상 수상자도 깨지면 물타다 망한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연 30% 쉽게 버는 공식’ 어쩌고 하는 거. 이건 유튜브에도 널려 있는 그 ‘마법 공식’을 남들이 주워가지도 않을 만큼 호모 사피엔스가 멍청하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가능하다. 생물의 진화사를 봐도 생태계에 특정한 진공이 생기거나 잉여가 발생하면 반드시 차기 마련이다. 어제까지 있던 알파를 근거로 미래를 약속한다? 백미러만 보고 운전하는 꼴.
투자에 대해 독서하고 자료 찾고 하는 모든 과정은 ‘인덱스만 사서 가만히 있기’라는 단 한 가지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