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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은 어떻게 팬데믹이 됐나②

날짜
202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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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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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전파자, 확산의 핵심

에스파의 'next level'을 검색하면 나오는 많은 재가공 콘텐츠.
2000년대 이미 세계 수준에서 뒤쳐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케이팝의 확산을 앞당긴 건 '슈퍼전파자'의 존재였다.
지금 유튜브에 'Next level'을 치면 공식 뮤직비디오가 아닌 한 유튜버가 올린 교차편집 영상이 뜬다. 더 아래에는 다른 유튜버가 만든 플레이리스트와 댓글모음 영상이 뜬다. 소속 가수로 만든 콘텐츠가 퍼져도 회사는 초상권이나 저작권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 이들의 재가공이 확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무작위적인 '폭발'이 잦아졌다. 공식 뮤직비디오나 방송사 무대 영상이 아닌 재가공 영상이 그런 기제가 되는 일도 늘었다. 알고리즘을 타고 재가공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지구 반대편의 팬이 '왜 이게 내 피드에 뜨지? 그런데 왜 이렇게 좋지?'라는 반응이 나오는 식이다.
'역주행'은 슈퍼전파의 대표적 사례다. 무명의 걸그룹이었던 EXID는 '홈마'가 찍은 영상으로 한 번에 스타가 됐다. 해체를 눈 앞에 둔 브레이브걸스를 뜨게 만든 건 댓글모음 영상이다. 모두 기획사가 만든 게 아니라 팬이 자발적으로 만든 콘텐츠다. 이 두 사례는 국내에서 생긴 일이지만, 한국인도 모르는 사이에 해외에서 케이팝의 슈퍼 전파는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다.
한국 유튜브 생태계에 넘치는 '능력자'는 모두 잠재적 슈퍼전파자다. 여기에 팬들이 남긴 센스 있는 댓글은 다시 콘텐츠가 돼 전파된다. 케이팝은 따로 자막을 달아서 올리지 않아도 팬들이 나서서 각국 언어로 된 자막을 단다. 팬은 일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돌에서 콘텐츠가 뻗어나올 뿐 아니라 거꾸로 재가공 콘텐츠가 아이돌의 매력을 더하는 전파가 일어난다.

'변이'를 기획하는 기획사

기획사는 이런 전파자를 더 활용하기 위한 요소를 알고 있다. 바로 '떡밥'이다. 보통 케이팝 덕질을 시작하면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나오는 영상은 모두 보고, 브이앱에서 라이브로 말 한마디 다 챙긴 후 커뮤니티에 가서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타는 여러 채널을 통해 많은 떡밥을 뿌린다. 아예 데뷔 전부터 찍어 SNS에 뿌리며 떡밥을 만든다. 라이브나 비하인드 콘텐츠도 이런 역할에 충실하다.
이런 과정은 바이러스가 활발하게 '변이'하는 과정과 닯아있다. 케이팝 기획사는 이런 변이 가능성을 높일 여러가지 장치를 만든다. 한 그룹을 여러 조합을 쪼개 다양한 컨셉을 소화하게 만드는 유닛 활동이 대표적이다. 멤버가 거의 20명에 가까운 그룹을 내는 건 애초에 그 안에서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내려는 의도다. 그 안에서 알파, 베타, 델타... 끝없이 새로운 조합을 만들고 실험해 전파 가능성을 높인다.
여러 성공을 거듭하며 다양한 덕질 콘텐츠를 만드는 시스템도 자리를 잡고 있다. 신곡이 하나 나오면 일단 티저부터 여러개가 나온다. 그러다 공식 뮤직비디오가 나오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퍼포먼스 버전, 세로버전, 직캠버전, 무대 뒤 영상, 각 멤버별 영상, 무대 전체 영상이 쏟아진다. 여기에 '광야' 같은 독특한 코드를 넣어둬서 세계관으로 또 한 번 콘텐츠가 쏟아진다.
케이팝의 부상에서 기획에만 초점을 맞춰선 반 쪽 짜리 정답인 이유다. 기획사는 성공을 기획하지 않는다. 아니 한국의 작은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신 대중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 포인트를 찾고 배치한다. 얻어 걸리는 것도 실력이라고 하지 않난. 케이팝 그룹이 갑자기 빵 뜨면 대체 무슨 일인가 싶지만, 그 또한 철저한 기획이 행운을 만나 터진 결과다.
변이를 거치며 케이팝은 강해지고 있다. 2010년대 벌어진 불공정 계약 논란은 진통 끝에 표준계약서 문화를 낳았다. 변이 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한 외국인 멤버 구성은 국가주의(애국심 논란) 리스크를 키웠다. 이런 문제에 여러번 부딪히면서 기획사들은 다국적 그룹의 경우 철저하게 정치적 이슈를 피해가게 만들었다. 아예 가상의 세계관을 만드는 작업도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작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거부할 이유를 주지 않는 케이팝

한국 사회의 높은 윤리적 기대감은 외국인들이 낯선 음악에 '마스크'를 쓰지 않게 하는데 일조했다. 일부 외신에서 '공장식 육성'을 문제 삼기도 했지만, 이외에 한국의 아이돌은 외국인들이 딱히 거부감을 일으킬만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케이팝은 대체로 사랑, 공감, 연대 같은 긍정적 내러티브를 노래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호소하는 국가에서 울려 퍼질 만큼 선한 메시지로 차있다.
스타 개인도 높은 기대에 부응하는 훈련을 받는다. 한국의 격력한 '고나리질' 문화는 스타 개개인에게 엄청난 압박을 주지만, 한 편으로는 스타 개개인이 강한 자기관리를 하도록 만들었다. 기획사 시스템은 '연애 금지' 같은 비인간적인 관리까지 동원해 한국의 스타를 거부할 명분을 주지 않게 만들고 있다.
케이팝의 약진에 약이 오른 중국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한국에서 했다면 못할게 뭐가 있냐는 분위기다. 타이거맘 같은 기획사와 치열한 경쟁과 투자까지 한국을 본받고 있다. 하지만 케이팝의 핵심은 기획이 아니라 '변이'다. 기획의 역할은 슈퍼전파자 사이에서 자유로운 재가공이 일어날 역량을 갖게 하는 것까지다. 더 중요한 건 자유로운 문화에서 전세계를 인터넷으로 넘나드는 전파자의 존재와 변이 가능성이다. 변이와 혼종의 장이었던 홍콩도 두고 보지 못한 나라에서 저런 창발이 일어날 수 있을까.

치명률은 낮게, 전파력은 강하게

BTS의 'Butter'은 영어 가사로 제작돼 영어권에서 더 친숙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수 많은 변이를 거쳐 강력한 전파자를 확보한 케이팝은 마침내 일본을 넘어 '팬데믹'('모두'의 Pan과 '인간'을 뜻하는 Demic의 합성어)에 성공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변할지도 어느정도 예상해볼 수 있다.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치명률은 낮아지고 전파력은 강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너무 치명적이면 숙주가 버티지 못한다. 대신 거부감을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하며 전파 범위를 넓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한 군집 안에서 공존해도 될 만큼 친숙한 존재로 변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어로, 한국의 뽕끼 가득한 음악이다. 강남스타일이 전세계를 휩쓴 후 나온 음악은 싸이의 느낌은 남아있으면서도 점차 미국의 음악에 가까워져 갔다. 가사는 영어로 바뀌고, 미국인의 귀에 더 익숙한 느낌이 강했다. 케이팝의 '매운 맛'은 낮추면서 미국인의 귀에 더 친숙하게 녹아드는 전략으로 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케이팝은 한국의 문화적 자산을 새로운 코드로 삼아 변하고 있다. 국악에 기반을 둔 잠비나이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다. 이미 NPR에 진출했는데, 그보다 먼저 간 씽씽은 국악이 접목된 케이팝의 서태지 같은 존재다. 'Ahn ye eun'은 베트남에서 1위에 올랐지만, 한국인은 모른다. 케이팝은 '정점'이 있는 유행이 아니다.

미래: 토착화하는 케이팝

케이팝은 점차 전세계에서 토착화하고 있다. 이젠 외국인이 외국어로 불렀지만 딱 들으면 묘하게 '이거 케이팝이네' 하는 콘텐츠도 올라온다. BTS가 정상에 오른 후 '독특한 취향'에서 익숙한 문화로 거듭난 케이팝은 거꾸로 미국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케이팝은 하나의 코드가 돼 다른 나라의 문화에 녹아들 가능성이 높다. 어느 나라의 거리를 걷다가 처음 듣는 외국 가수의 노래를 듣고 멈춰 '어? 이거 케이팝인가' 하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